[언론문건파문]이종찬씨 녹취록 있다면 왜 못밝히나?

  • 입력 1999년 11월 1일 20시 06분


이종찬국민회의부총재는 1일에도 이른바 ‘언론대책문건’의 작성과정에 중앙일보 간부가 관여했음을 입증할 ‘녹취록’이 있다는 자신의 종전 발언을 거듭 뒤집었다. “녹취록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녹취록’의 존재여부, 존재한다면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이 파문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이부총재가 지난달 28일 국민회의 의원총회에서 밝힌 녹취록은 이부총재의 보좌관인 최상주(崔相宙)씨가 이틀전(26일) 베이징(北京)에 체류 중인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기자와 나눈 통화 내용. 이부총재가 얘기한 것은 바로 그 통화 내용이었으나 간부 이름에 대해서는 “거론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이부총재는 다음날 녹취록 발언이 공개되자 “표현이 와전됐다”며 전날 발언을 번복했고, 이후엔 “없다”며 부인으로 일관했다. 이와 관련해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부총재의 발언 직후 ‘중앙일보 문제를 더 이상 거론치 말라’는 지침이 전달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의문은 당연히 “무슨 내용이 담겨 있기에 그런 지침이 내려진 것일까”로 옮겨간다.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은 △문기자가 문건작성을 전후해 중앙일보의 모 간부와 상의를 했다는 것 △문건을 이부총재 이외의 여권 인사들에게도 보냈다는 것 등이다.

이 부분에 대해 문기자는 베이징에서 일절 부인하고 있다. 또 여권 내에서는 △녹취록이 아니라 통화내용 메모다 △다른 여권 인사들에게 보낸 문건은 주제가 다른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가지 관심을 가질 만한 사안은 문기자의 E메일 활용설이다. 여권 핵심인사들에게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문기자가 서울에 있는 친지들과 E메일을 활용해 대화를 주고 받았다는 것. 따라서 당국은 국제전화를 통한 E메일 교신사실을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른바 ‘감청시비’가 제기되는 문제이므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추론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다른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즉 이부총재가 문기자에게 문건작성을 요구해놓고 사태가 의외로 전개되자 녹취록 발언까지 흘리고 있다는 관점이다.

아무튼 문기자가 궁지에 몰린 자사(自社)를 돕기 위해 회사 간부들과의 사전 상의 아래 작성한 문건인지, 아니면 이부총재와 상의하고 작성한 문건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당초 발표된 대로 ‘개인적인 충정’에서 보낸 문건인지, 또다른 동기에 따른 것인지를 밝혀낼 수 있는 첫 열쇠는 ‘녹취록’의 실체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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