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문건 파문]'李기자 돈수수' 공방 치열

  • 입력 1999년 11월 1일 01시 15분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언론대책문건’을 폭로한 이후 반전(反轉)에 반전을 거듭하던 정국이 급기야 ‘언론인 매수공작’에다 평화방송 이도준(李到俊)기자와의 ‘관계’를 위해 정의원이 이권에 개입한 혐의까지 제기돼 정국양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기자가 정의원과의 관계에서 직간접으로 ‘수천만원’ 규모의 돈을 받았다는 혐의가 불거지고, 이종찬국민회의부총재의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입수했다는 문건도 창고에 보관 중이던 문서박스를 뜯고 가지고 나왔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그 파장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李총재도 개입 의혹▼

국민회의는 31일 정의원이 이기자에게 준 돈이 한나라당 자금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사전인지 의혹도 제기했다. 국민회의는 비록 ‘조심스럽게’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돈의 성격이 말 그대로 ‘공작금’으로 드러날 경우의 정치적 파장은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여권은 정의원이 제보자가 이기자임을 밝히기 직전인 29일 오후 이기자가 이총재를 면담했다는 사실과 이기자에게 건네진 돈의 액수가 당초 알려진 1000만원이 아니라 ‘수천만원’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총재까지 사전인지한 ‘공작’이라고 단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권 인사들은 “검찰의 수사 결과 당자금에 의한 공작혐의가 드러날 경우 이총재는 ‘총풍’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도덕적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권은 이른바 ‘언론대책문건’ 파동이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까지는 원치 않는 듯하다.

이미 이강래(李康來)전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문건을 작성했다는 정의원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돈까지 오간 것으로 드러나 한나라당과 이총재의 입지가 어려워질 대로 어려워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민회의 이영일(李榮一)대변인이 “이제 문건 파문은 정치적으로 종결됐다. 우리는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와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서 부패방지법 등 각종 개혁법안과 내년도 예산안 처리문제, 그리고 정치개혁에 주력할 것”이라고 천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여권에서 이총재가 미증유(未曾有)의 ‘언론인 매수공작’에 관여했을 지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한 만큼 한나라당측은 ‘사력(死力)’을 다해 반격에 나설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한나라당은 당장 “‘언론장악’ 음모라는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여권의 역(逆)공작”이라고 발끈하고 나섰다. 과거 이총재를 겨냥한 ‘총풍’ ‘세풍(稅風)’사건 때 한나라당의 대응태도를 돌이켜보면 여권이 얘기하는 개혁입법, 내년도 예산, 정치개혁 협상은 상당기간 아예 협상의 대상이 못될 지도 모른다. 국정조사도 마찬가지다.

▼'李총재 고사작전 판단▼

한나라당은 여권의 ‘야당 공작설’ 제기가 단순히 야당길들이기나 이총재 흠집내기 차원을 넘어선 ‘이회창 고사(枯死)시키기’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원의 문건 폭로→여권의 ‘한나라당과 중앙일보 음모설’→여권의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기자 문건작성 폭로→야권의 평화방송 이기자 전달 폭로→정의원의 거액 전달사실 공개’로 이어져온 문건 공방은 향후 전개과정에 따라 끊임없이 정치권을 요동치게 할 것 같다.

이기자가 이부총재 사무실에서 ‘절취’했다는 다른 문건들의 내용이 드러날 경우 상황이 또다시 반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언론대책문건’이 ‘옷사건’ 파문 직후에 작성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부총재 사무실에서 ‘절취’된 나머지 문건들도 민감한 정국상황, 특히 대야(對野)관계와 관련된 것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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