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본색이 뭐냐』 새묵은 정치이념 '색깔론' 공방

  • 입력 1999년 8월 17일 19시 19분


해묵은 여야간 ‘색깔논쟁’이 불붙고 있다. 불을 지른 쪽은 한나라당. 16일 총재단과 고문단 회의를 빌려 색깔론에 불을 붙인 한나라당은 17일 이회창(李會昌)총재와 대변인단이 일제히 나서 불을 지폈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는 ‘구태정치의 표본’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맞불을 놓았다.

이총재는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를 자청,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밝힌 재벌개혁과 국가보안법 개정 방침을 강력 비난한 뒤 “국민이 불안과 의혹을 느낄 만한 대목이 있다”며 포문을 열었다.

이사철(李思哲)대변인도 논평에서 “현 정권의 재벌정책은 재벌개혁이 아니라 재벌해체 발상이다. 김대중정권의 전체주의적 발상이 위험스럽기 그지없다”고까지 말했다.

장광근(張光根)부대변인은 “김태동(金泰東)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의 언행은 우리가 사회주의국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공무원이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면 마오쩌둥(毛澤東)식의 홍위병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대통령 주변 인물들의 전도된 사고와 발상이 걱정스럽다”고 목청을 높였다.

국민회의측도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부터 나섰다. 이대행은 “재벌개혁은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고 국가보안법개정은 불고지죄 등으로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청산해야 할 대상은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이회창식 정치작태”(한화갑·韓和甲사무총장) “과거정권은 지역감정과 색깔논쟁으로 정권을 유지해왔는데 한나라당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김옥두·金玉斗총재비서실장) “재벌개혁이 시장경제에 의해 이뤄진다는 미몽에서 사는 게 이총재”(정동채·鄭東采기조위원장)라는 당직자들의 비난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한편 자민련은 재벌개혁을 둘러싼 국민회의와 한나라당간 색깔논쟁에서는 한발 빼면서도 국가보안법개정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기본골격이 유지돼야 한다”는 당론을 고수했다.

한나라당의 색깔론 공세는 DJ의 ‘중산층과 서민으로의 회귀’ 움직임에 불안을 느끼는 보수 기득권층 끌어안기의 일환. 그러나 ‘재벌개혁’이라는 명분에 반대만 할 수도 없어 “시장경제에 따라 개혁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주장했다.

여권 역시 집권초부터 ‘재벌개혁’을 외쳤으나 오락가락한 경제정책 때문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실정. 정가 일각에서는 이같은 여야 내부의 혼선이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으로 표출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양기대·박제균기자〉kee@donga.com

▼ 국보법 뭐가 문제인가?

국가보안법에서 그동안 ‘독소조항’ 논란이 있었던 부분은 ‘반국가단체’의 개념. 이 법은 2조에서 ‘반국가단체’를 ‘정부를 참칭(僭稱·제멋대로 일컬음)하거나 국가의 변란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단체’로 규정했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북한을 일관되게 ‘반국가단체’로 판단해왔다. 그러나 이 조항은 북한을 ‘교류와 협력’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남북교류협력법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개념재정립이 필요하다는 게 여권의 주장.

이 법은 또 ‘반국가단체’를 ‘찬양 고무’(7조)하거나 ‘회합 통신’(8조)한 행위를 처벌하도록 했다. 이 대목이 바로 “개념이 애매하고 추상적이어서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간첩임을 알면서도 수사기관에 고지하지 않은 자를 처벌하도록 한 불고지죄(10조)도 대표적인 독소조항. 친족관계인 경우 경감조항이 있지만 단지 범죄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여권 일각에서도 이 조항은 수사상 필요하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이 법 위반사범의 경우 구속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한 19조도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많은 실정이다.

〈공종식기자〉k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