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치자금법 1년]정치권에 「투명모금」 새바람

  • 입력 1998년 11월 13일 19시 33분


국민회의 소속 A의원은 사무실에 항상 ‘비상용’ 후원회영수증을 한묶음 비치해 놓고 있다. 방문객들이 불시에 돈을 내놓을 때 현장에서 발급해주기 위한 영수증이다.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은 ‘떡값’에 대해서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지난해 11월14일부터 시행되면서 정치권에는 미세하지만 의미있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자신이 없으면’ 받은 돈을 후원금처리하는 관행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여당의 모 중진의원은 올해부터 자체 후원금 상한선을 아예 5백만원으로 정해 이 액수를 넘는 후원금은 돌려주고 있다. 다른 중진의원도 “가끔 ‘정치하는데 쓰라’며 1천만원이나 2천만원을 놓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후원금 처리하기에는 부담이 돼 돌려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야당 중진들의 경우는 후원금 자체가 엄청나게 줄었지만 최근의 사정(司正)정국 등을 감안해 소액의 후원금도 영수증 처리하고 있다.

나중에 선관위 제출용 회계장부 정리를 위해 신용카드사용을 원칙으로 삼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자민련의 한 중진의원은 “사람들을 만날 때 드는 식사값 등을 신용카드로 처리해 사용근거를 남기고 있다”면서 “신용카드결제액이 한달 평균 1천만원”이라고 밝혔다.

또 초선의원들 사이에서는 미국식 ‘소액다수’ 후원회를 조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앵커출신인 국민회의 정동영(鄭東泳)의원은 ‘팬’들을 중심으로 조직한 후원회원 2백여명이 매달 1만∼10만원의 돈을 보내주고 있다. 유선호(柳宣浩)의원도 올초 동창과 친구들을 중심으로 계좌당 10만원씩을 후원금으로 내는 ‘1백인후원회’를 조직했다.

한나라당 김재천(金在千)의원의 경우는 3백여명의 후원회원들이 은행계좌로 10만∼20만원의 후원금을 넣어주고 있다. 자민련 정우택(鄭宇澤)의원도 소액다수 후원회를 조직해 후원금에 대해서는 예외없이 영수증처리하고 있다.

한편 정치자금법 개정 이후 ‘검은돈’이 정치권에서 사라졌을까 하는데 대해서는 정치권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아직까지 수사기관에서 이 기간에 이뤄진 의원들의 뇌물수수를 밝혀낸 적은 없다.

그러나 부패구조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디에선가 은밀한 돈거래가 이뤄졌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공종식기자〉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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