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정부수립50돌기념 행사 의의]

입력 1998-07-16 19:42수정 2009-09-25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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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자치부의 김재철(金在喆)의정국장은 요즘 고민이 많다. 그는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사업기획단장으로 뭔가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다. 행자부가 직 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기념행사와 사업은 50여개. 이 모든 행사를 관통하는 한줄기 빛같은 그런 정신은 없는 것일까, 지난 반세기 우리들 삶의 궤적을 가감없이 드러내면서 우리를 다시 한번 힘차게 도약하도록 끌고가는 그런 메시지는 없는 것일까. 김국장의 고민은 8월15일이 다가오면서 더 깊어가고 있다.

1989년 7월14일. 그날 프랑스는 정신 없었고 파리는 미쳤다. 프랑스혁명 2백주년. 파리는 청 백 적의 3색으로 뒤덮였다. 바스티유감옥을 무너뜨렸던 그 때의 함성과 열정이 거리를 메웠다. 혁명 2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행사만 수천개에 달했다. 이날 프랑스인들은 무엇을 기념했을까. 자유 평등 박애의 인권수호였고 그것을 가능케 했던 프랑스의 위대함이었다.

1976년 7월4일. 뉴욕시민들은 허드슨강에 뜬 범선 2백척을 보았다. 미국독립 2백년. 선조들은 범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넜고 오늘의 위대한 미국을 만들었다. 미국인들은 이날 아메리칸 드림의 절정을 맛보았다. 포드대통령은 기념연설에서 “보다 큰 창조성과 개성 속에서 자유를 완성시키는 세기로서의 미국독립 제3세기를 바라보자”고 말했다.

우리도 정부수립 50년을 맞는다. 엄밀히 말하면 건국 50년이다. 비록 남북으로 나뉘기는 했지만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 민족국가로서 첫발을 내디딘지 반세기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기념할 것인가.

지난 50년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참으로 다양하다. 분단 고착과 전쟁, 그리고 혁명과 정변으로 이어지는 불안한 역사 속에서도 우리는 근대화를 이뤘고 민주화도 진전시켰다. 50년이란 짧은 기간에 이 두가지를 다 해낸 민족은 드물다. 한 때 ‘한강의 기적’이란 말은 전후 신생 독립국들에 이상적인 발전전략의 한 모델을 의미하기도 했다.

개발독재와 권위주의의 강압 속에서 치른 희생 또한 컸다. 많은 사람이 민주화 과정에서, 분단이 빚어낸 이념 갈등 속에서, 그리고 성장의 그늘에서 신음하고 좌절하다가 그냥 스러져가기도 했다. 전통은 서구적인 가치들과 충돌하면서 정체성 상실의 위험을 언제나 제기했다.

이런 50년 속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강한 성취동기였고 자신감이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구호 하나로 가난을 이겨냈고 독재의 사슬을 걷어냈다. 올림픽도 치렀고 교역량 세계 12위의 무역대국으로 올라서기도 했다.

우리가 기념할 것은 바로 이것이라고 본다.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처럼, 미국독립의 자유처럼 거창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우리만의 가치와 이상이 있다. 그것은 끊어질 듯하면서도 결코 끊어져 본 적이 없는 끈기와 인내이며 세상과 인생에 대한 낙관이다.

정부수립 50년, 우리는 이런 가치들을 되새기고 기려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한 때의 부주의로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라는 IMF 관리체제하에 살지만 우리에게 이런 정신과 가치가 살아 있음을 되새겨줘야 한다.

동아일보가 정부수립 50년 기념사업으로 8대 행사를 펼치는 것은 이런 소이에서다. 비록 축가를 부르기보다는 반성하고 결의를 다져야 할 오늘이지만 동아일보는 이들 행사를 통해 우리가 가진 무한한 정신적 자산에 다시 눈을 돌리게 하고 이를 통해 보다 나은 21세기로 모두 함께 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재호기자〉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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