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행정 비효율현장]업무중복-조직비대화 『개혁無風』

  • 입력 1998년 5월 19일 19시 47분


인구가 크게 준 지방에 공무원은 갑절 가까이 늘었다. 디스켓 몇 상자를 사는 데 결재도장만 10개. 한주일 동안 일선 행정기관 공무원 셋이서 한 일이란 주민등록등본 등 문서 6장 발급….

동아일보 취재진이 11일부터 일주일 동안 전국 각도의 행정조직의 운용실태를 취재한 결과 드러난 비능률 사례들이다.

전북 김제시의 경우 95년 시 군 통합된 이후 직제가 4국2담당관25과6사업소. 통합되기 전 각각 2실 11과와 2실10과2사업소였던 것과 비교하면 실이 국으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과와 사업소는 오히려 늘어났다.

김제시의 경우 인구가 23만4천여명이었던 63년에 2백74명이던 공무원이 인구가 12만2천여명으로 절반 가량 줄어든 현재는 1천75명으로 오히려 4배 가량 늘었다.

한 지방군수는 “현재의 지방행정 조직은 업무에 사람을 맞춘 것이 아니라 자리에 사람을 맞춘 조직”이라며 “법적으로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을 함부로 해고할 수 없는데다 지방자치단체장 재선을 위해서는 공무원의 비위를 건드릴 수 없기 때문에 아무도 문제삼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지방행정 조직개편은 과와 계의 명칭만 바꾸었을 뿐이라는 지적이 많다. 공무원 수를 줄인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대부분의 지방 행정조직은 계속 공무원 ‘자리’만 늘려왔고 업무중복은 더욱 심해졌으며 비효율성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전북 무주군 적상면 상곡출장소. 이곳에는 6급 공무원인 계장과 8, 9급 공무원 1명씩 모두 3명의 공무원이 근무하고 있다. 11일부터 일주일 동안 이들이 한 일은 주민등록과 호적등본 6통을 발급해준 것이 전부였다.

경남 마산시청 공무원 김모씨는 컴퓨터 디스켓 10상자를 구입하기 위해 무려 10개에 가까운 결재도장을 받아야 했다.

소속 계장 과장의 결재는 물론이고 회계과 담당직원 계장 과장을 거쳐 지출계 담당직원 계장 과장 등의 결재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결재과정을 거쳐 물품 구입 공무원이 디스켓을 사서 김씨에게 전달하는데 하루가 넘게 걸렸다.업무 중복전북 무주군의 농촌지도소의 주요 업무는 주거환경개선, 영농후계자 지원, 농업 및 축산생산증진 지원 등이다. 이 업무는 군청 농업지원과와 건설도시과 업무와 다를 바 없다. 취재결과 전국 모든 군에 있는 농촌지도소가 무주군의 상황과 거의 같았으며 충남 연기군에는 직원이 46명이나 됐다.

전북 김제시의 민방위재난관리과 재난관리계 직원들과 건설과 방재계 직원들이 하는 업무는 차이를 찾기 어렵다. 방재계 직원은 “명목상으로는 인재(人災)는 재난관리계가, 자연재해는 방재계가 담당하는 것으로 구분해 놓고 있지만 실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털어 놓았다.

정부가 폐지를 검토중인 읍면사무소도 업무중복의 표본. 강원 화천군 화천읍사무소에는 18일 민원서류 발급 창구 외의 민원창구는 ‘개점휴업’ 상태였다.

업무 비효율무주군수는 최근 일용직 직원을 채용하겠다는 계장의 보고를 받고 확인 결과 계장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업무를 일용직을 채용해 맡기려 한 사실을 알고 퇴짜를 놓았다.

무주군청 공무원 5백5명 가운데 계장 이상 간부는 1백21명. 간부가 전체 직원의 20%를 넘다보니 계장 1명에 직원 1명인 계도 9개나 된다. 평직원들의 업무관행 또한 개선되지 않아 사무실마다 컴퓨터가 있지만 컴퓨터를 제대로 다루는 직원은 많지 않았다.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는 일용직 여직원이 따로 있다.

경북 칠곡군청. 내무과 통계전산계의 팩시밀리 관리 담당 직원의 하루 일과는 도청과 각 면사무소에서 보내오는 50여장의 팩스를 각 과에 나눠주는 일이 전부다.

90년 2개 구청을 신설한 경남 마산시. 6층 이하의 건물 신축은 구청 건축과, 그 이상은 시청 주택과가 담당한다. 조직 비대화인구 43만여명인 마산시의 공무원은 2개 구청 공무원 4백83명을 합쳐 1천9백75명. 그러나 인구 50여만명인 인근 창원시의 공무원은 1천3백84명으로 오히려 6백명 가까이 적다. 창원시가 마산시보다 공무원이 적은 것은 구청이 없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2개 구의 인건비와 사무용품비 등 순수행정비로 모두 1백61억원을 사용한 마산시가 시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구청을 폐지하지 않는 이유는 도청에서 받는 도세 징수교부금 때문이었다. 인구 50만명 이상이거나 구청이 있는 시는 도세 징수교부금을 20%씩 더 받아낼 수 있다.

마산시청 공무원은 “구청을 폐지하면 약 2백억원의 교부금을 못받게 되기 때문에 행정적으로 별 필요도 없는 구청을 남겨둘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특별취재반:무주=이현두 청양·칠곡=서정보 김제=이명건 마산·화천=이완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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