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바꾼 한나라당]「民生」여론 수용-與압박 이중포석

  • 입력 1998년 3월 11일 06시 50분


한나라당이 김종필(金鍾泌·JP)총리 임명동의안 표결문제와 98년도 추가경정예산안을 연계처리한다는 당론을 철회했다. 우선 추경안부터 ‘분리처리’할 것인지의 여부는 11일 의원총회에서 최종 결론이 내려진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 분위기는 이미 거의 ‘추경안 분리처리’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

이같은 분위기는 최근 며칠 사이 한나라당 지도부의 당내 여론수렴 작업에서 강하게 감지됐다. 9일 오전 서청원(徐淸源)사무총장과 김명윤(金命潤) 이중재(李重載) 이홍구(李洪九)고문의 조찬회동, 이날저녁 서총장과 ‘헌정수호 비상대책위원회’ 위원들의 만찬모임, 10일 낮 이상득(李相得)총무와 김중위(金重緯) 최병렬(崔秉烈) 박희태(朴熺太) 김덕(金悳) 이부영(李富榮)의원 등의 중진모임, 이날 저녁 서총장과 신상우(辛相佑) 이세기(李世基) 김영구(金榮龜) 양정규(梁正圭)의원 등 각 계파 중진의원 만찬모임이 그같은 여론수렴 과정들이었다.

특히 10일 저녁 각 계파 중진의원들은 서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JP임명동의안 문제는 헌법과 관계된 문제인 만큼 당론수정을 할 수 없지만 추경안은 민생현안을 해결한다는 차원에서 JP문제와 분리처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는 후문이다.

사실 한나라당은 6일 단독으로 국회를 소집하면서부터 추경안 처리문제를 놓고 고심해 왔다. 조순(趙淳)총재가 이날 여권이 변화된 경제지표를 반영, 추경안을 수정제출하면 분리처리하겠다는 뜻을 강력 시사했었다.

다시 말해 김대중(金大中)정부가 지난 2월 김영삼(金泳三)정부가 제출한 추경안에 한나라당의 요구를 반영, 수정제출하면 추경안 심의처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것이었다.

조총재는 “정치는 정치이고 민생은 민생”이라며 “그러나 김영삼정부가 추경안을 제출할 때 추정한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2∼3%였지만 지금 일부 연구기관에서는 마이너스0.2% 성장까지 예상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이같이 변화된 경제지표를 감안해 추경안을 손질해 오면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JP총리임명동의안 표결문제로 정국경색이 심화하면서 조총재의 ‘분리처리론’은 움츠러들었고 한나라당의 당론은 “JP서리체제라는 ‘헌정파괴사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어떤 안건도 다룰 수 없다”는 ‘강경 연계전략’으로 흐르고 말았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이와 함께 ‘북풍(北風)사건’에 대한 국정조사권을 발동하는 한편 JP서리체제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총리서리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신청 및 권한쟁의심판을 제출하는 등 ‘초강경책’을 구사하자 당내에서는 중진의원들을 중심으로 ‘협상여지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조순총재―이한동(李漢東)대표―서청원총장으로 이어지는 현 지도부가 초재선의원들의 강경목소리에 편승, 정국을 지나치게 ‘벼랑 끝’으로 몰고가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었다.

일부 중진들 사이에서는 JP총리임명동의안 표결문제도 김대중정부가 투표저지행위에 대해 사과하는 대신 한나라당도 ‘재투표론’을 받아들임으로써 경색정국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타협론까지 제기됐었다.

서총장이 최근 ‘초선 그룹’의 핵심인물들로 알려진 이신범(李信範) 홍준표(洪準杓) 안상수(安商守)의원 등 10명을 초청, 여론조정작업에 나선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4월 대란설’까지 들먹여지고 있는 상황에서 실업고용 대책자금과 금융기관 부실채권 정리자금을 담고 있는 추경안을 계속 ‘볼모’로 잡을 경우 여론의 압박을 견뎌내기 힘들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추경안을 분리처리키로 ‘U턴’한 배경에는 여권이 한나라당의 ‘JP총리임명동의안―추경안 연계전략’을 당리당략적 정쟁(政爭)이라는 식으로 여론몰이할 경우에 대비, 미리 ‘역공(逆攻)’을 취하겠다는 의도도 들어 있다. 한나라당이 추경안 분리처리에는 응하되 JP총리서리의 추경안 시정연설은 있을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JP는 국회동의를 얻지 못한 총리지명자일 뿐이기 때문에 국회에서 예산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할 수 없다”며 “여권이 그렇다고 JP를 제쳐두고 재정경제부장관을 내세워 추경안 제안연설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추경안 분리처리의 고리를 풀어버리면 민생현안이라는 ‘공’은 이제 여권의 부담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얘기다. 아닌게 아니라 여권은 재경부장관의 추경안 시정연설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김창혁·박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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