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 결산]온통 大選생각… 『빈껍데기 국회』

  • 입력 1997년 11월 18일 20시 13분


올해 정기국회는 12월 대통령선거 때문에 회기가 1개월가량 단축된데다 정당마다 대선준비에만 골몰, 입법활동과 행정부견제 등 국회의 제 기능을 스스로 포기한 빈 껍데기였다. 경제위기 극복과 민생안정이라는 산적한 국정현안을 두고도 각 정당은 상대정당과 후보자를 비난하는 폭로전을 벌이는데만 열을 올렸고 건전한 정책제안이나 토론은 뒷전으로 밀어두기 일쑤였다. 이로 인해 법안처리는 회기 막판에 가서야 각 정당간 이견으로 파행을 거듭한 끝에 졸속으로 매듭지어졌고 상당수는 회기내에 처리되지 못했다. ▼ 출석률 저조 ▼ 이번 정기국회는 대선을 앞두고 정당마다 각종 행사나 모임이 잦아 본회의는 물론 상임위 회의에서 의사정족수(재적의원의 5분의 1)나 의결정족수(재적의원의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회의가 공전되는 사태가 빈발했다. 특히 다수당인 신한국당의 경우 정기국회 중에 당 내분사태가 극도로 악화, 회기 내내 의석을 꾸준히 지킨 의원들은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실례로 지난달 25일과 27일 대정부질문 때는 의사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국회 사무처직원들이 의원회관에 전화를 걸어 출석을 독려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늦은 오후 시간에는 본회의장에 10여명의 의원만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최악의 집단직무유기 사태가 수시로 빚어졌다. 법안통과를 위해 열린 17일 본회의에서도 의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는 바람에 회의도중 4차례나 의결정족수에 미달하는 사태가 벌어져 의사진행이 간간이 중단됐다. ▼ 법안 졸속처리 ▼ 정기국회가 열리기 전 국회에는 모두 3백여개의 법안이 계류중이었으나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한 법안은 70여건에 그쳤다. 또 원칙없이 대선때의 이해관계만을 의식해 특정지역의 반발을 사는 법안은 아예 보류하는 사례도 수두룩했다. 금융개혁 관련법안은 금융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사안이었으나 금융개혁과는 별 상관이 없는 금융감독기구의 통합문제로 진통을 겪다가 결국 무산된 졸속처리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각 당은 13개 법안중 매우 시급한 일부 법안이라도 분리 처리하거나 법안내용을 조정, 처리하는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금융감독기구 통합을 둘러싼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 등 당사기관간의 힘겨루기에 휘말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 와중에 금융실명제 대체입법과 자금세탁방지법은 법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슬그머니 회기내에 처리하지 않기로 결정, 실명제 폐지논란과 함께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대선을 틈타 국가기관과 정부부처가 서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밥그릇싸움에 국회가 휘말린 것도 두드러졌다. 구속영장 실질심사제도의 요건을 제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검사출신 의원들과 판사출신 의원들이 노골적인 대리전을 벌여 빈축을 샀다. 이는 개정안 심의과정에서 법원과 검찰이 의원들을 상대로 치열한 로비활동을 벌인 결과였다. ▼ 겉핥기 예산 심의 ▼ 내년도 예산안 심의는 막판까지 계수조정 작업으로 진통을 겪었으나 예년과 달리 각 당이 크게 충돌하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각 당이 대선 표밭을 의식, 선심성 예산을 관철시키기 위해 갈라먹기식 협상을 벌인 때문이었다. 물론 내년도 예산안이 경기불황으로 인해 당초부터 긴축예산으로 편성된 탓도 있다. 이와 함께 예산심의 과정에서 의원들의 불성실한 모습에 대해 비판여론이 비등했다. 지난 4일 예결위는 전체회의를 열고 97년 추경예산안을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의결정족수인 과반수(총 50명중 26명)에 크게 미달하는 10여명만 출석하는 바람에 안건을 처리하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책질의 때도 참석 국무위원 수에도 못미치는 10여명의 예결위원만이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 때문에 정부측의 무성의한 서면답변이 속출했다. ▼ 회기 단축 ▼ 이번 정기국회 회기는 국회법상 9월10일부터 12월18일까지 1백일이다. 그러나 3당은 회기가 대선기간과 겹친다는 이유로 의사일정을 단축하기로 합의, 18일 본회의를 끝으로 휴회에 들어가 이번 정기국회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따라서 회기중 의사일정이 잡힌 일수는 65일에 불과했고 9월중순경 추석 귀향활동을 이유로 10여일간 상임위가 열리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본회의 및 상임위가 운영된 날은 법정 회기의 절반에 그친 50여일밖에 되지 않았다. 〈김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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