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趙연대」협상전말]趙淳,「李仁濟반감」표명후 급진전

  • 입력 1997년 11월 8일 08시 16분


7일 저녁 서울 여의도 63빌딩내 한 음식점에서 합당 선언을 한 이회창(李會昌)신한국당총재와 조순(趙淳)민주당총재의 표정은 시종 밝았다. ○…정확히 약속시간에 도착한 이총재는 기자들에게 『연대하기로 합의할 것이며 당대당 통합이 될 것』이라고 말해 이미 실무선에서 충분한 사전 조율이 끝났음을 시사했다. 이어 2분쯤 지나 미소를 지으며 조총재가 도착하자 이총재는 『조총재는 저의 (경기)고교 선배님이십니다』라며 환대했다. 취재진을 물리친 두사람은 1시간15분동안 배석자없이 실무진들이 마련한 합의문안에 대한 막바지 의견 조율을 벌였다. ○…만찬회동이 끝난 후 기자들의 질문에 이총재는 조총재에게 『선배님이 먼저 하세요』라고 하자, 조총재는 『(합의문에) 서명한 순서대로 하자』며 서로 양보하는 등 우의를 과시했다. 이총재는 『역사적 합의를 이뤘다』며 『조총재가 구국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렸고 나도 사심을 버리고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조총재는 『이번에 내각제개헌을 주창하는 세력에 맞서 제대로 된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총재는 이날 오후 당사 총재실에서 실무선에서 마련한 합의문 초안을 검토하고 곧바로 이한동(李漢東)대표와 김윤환(金潤煥) 김덕룡(金德龍)선대위원장을 불러 합의문내용을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이대표와 두 선대위원장은 별다른 이견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양당간 합당합의를 이끌어내기까지 여러 채널이 가동됐다. 우선 서울대 상대 동문인 이총재의 동생인 회성(會晟)씨와 조총재의 큰 아들 기송(淇松)씨의 막후접촉이 주효했다. 회성씨로부터 성공적인 접촉결과를 보고받은 이총재는 즉각 강재섭(姜在涉)의원에게 연대작업의 「전권」을 위임했다. 이 때부터 강의원은 기송씨와 조총재의 3남인 건(建)씨 등과 만나면서 물밑접촉을 벌였다. 그러나 지난달 20일경까지만 해도 연대작업은 답보상태였다. 조총재측에서 △이총재의 낮은 지지율 △민정계 중심의 신한국당 구성 등을 문제삼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총재와 조총재가 의기투합한 계기는 지난달 27일의 첫 회동자리였다. 반면 조총재는 지난달 30일 이인제(李仁濟)후보와 만난 뒤 이후보에 대한 기대를 거뒀다는 것. 이후보는 조총재에게 시종 「조선배」라고 불렀고 연대할 경우 「자리」문제를 협의하자고 했다. 조총재는 그날 회동이 끝난 뒤 한 측근에게 『도저히 자리를 같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불쾌감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협상은 지난달 31일 강재섭의원과 기송씨의 회동에서 급진전했다. 이 자리에서 기송씨는 『당대당으로 통합하되 흡수통합 형식은 곤란하므로 당명을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기송씨는 또 『아버지는 명예를 중요시하는 분이다. 섣불리 자리문제를 얘기하지 말라』는 조언까지 곁들였다. 강의원은 즉각 이총재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고 이총재는 지난 3일부터 김윤환선대위원장 등 당지도부와 협의, 사전정지 작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박제균·김재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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