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경수로 일터 신포,「통일새벽」을 연다

  • 입력 1997년 8월 19일 19시 50분


북한땅인 함경남도 신포시 금호지구 경수로건설현장의 강상리 직원숙소. 한국인 근로자 김모씨의 하루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리모컨으로 TV를 켜는 것으로 시작된다. 서울에서 그랬던 것처럼 밤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뉴스를 듣기 위해서다. TV를 보며 2,3일 묵은 국내 일간지를 훑어본다. 공사현장으로 출근해보니 어느덧 친숙해진 동년배의 북한근로자가 반갑게 맞이한다. 원전부지조성공사는 공사가 본격화되면 하루 최대 7천명의 남북한 인력(남한 2천명, 북한 5천명)이 투입될 대공사. 오전 작업이 끝나자 남북한 근로자들은 직원식당에 우르르 몰려가 점심식사를 한다. 대우그룹계열인 「아라코」가 운영하는 이 직원식당에서는 남한 요리사와 일꾼으로 고용된 북한 아주머니들이 음식을 만들어 낸다. 북한근로자들은 『남한음식은 다소 짠 편』이라고 불평을 하면서도 『그래도 음식맛은 좋다』고 찬사를 늘어놓는다. 하루일정이 끝난 저녁무렵. 김씨 등 남북한근로자들은 끼리끼리 발전소부지와 사택사이에 있는 주점을 찾는다. 사택부지에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운영하는 술집과 노래방 등 위락시설이 있지만 북한인들이 운영하는 이곳을 찾은 것. 생맥주 몇잔에 하루의 피로를 푼 이들은 근처의 노래방을 찾아 「소양강처녀」와 「휘파람」을 번갈아 부른다. 동전을 넣어 부르는 노래방기기에 이모씨 등 북한인부들은 마냥 신기한 표정이다. 믿기 어렵지만 실제 19일 착공식 이후 경수로공사현장에서 일어날 일들이다. 주변출입은 엄격히 통제되지만 경수로 건설현장인 금호지구 2백68만평은 북한당국의 간섭이 배제된 사실상 「자본주의특구」다. 물론 북한당국이 「자본주의사조」유입에 대비, 어느정도 공사인부에 대한 단속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남북한 동포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에 새지평을 열게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KEDO는 이곳에서 유엔 등 국제기구와 비슷한 특권을 누린다. 이에따라 KEDO는 자체적으로 치안유지활동을 벌이며 KEDO소속 직원은 외교관수준의 특혜속에 북측의 체포 구금이나 재판을 받지 않아도 된다. KEDO증명서만 보이면 복잡한 출입국절차를 거치지 않고 드나들 수 있다. 독자적인 통신망사용도 가능하다. 이미 지난 4일 금호지구 현장과 남한을 잇는 전용전화 8회선을 통해 수시 전화통화는 물론 팩스와 E메일전송도 문제가 없다. 남한과 연락하는 채널로 당분간은 이용회선이 제한되고 보안상의 이유도 있어 1인당 10개의 국내 전화번호만 사용가능하지만 착공후 14개월째부터는 별도의 위성을 임차, 직접공중통신망(IDD)을 통해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다. 또한 지난달 21일부터 부지내에 설치된 우체국을 통해 현장근로자들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국내 가족들과 편지 소포 등을 주고 받을 수 있다. 〈정연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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