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정통제력 상실…與 집안싸움 政權 『뇌사상태』

  • 입력 1997년 5월 10일 20시 17분


요즘은 정치인 누구를 만나도 한탄성 질문만 한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느냐』 『이러다 어떻게 되느냐』는 것 등이 단골 질문이다. 해법을 물으면 『끝이 보여야지』 하는 식의 막연한 대답뿐이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대선예비주자들마저 21세기는 설계하면서도 정작 한달 뒤의 정국에 대해서는 『정말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작년말 노동관계법 날치기통과와 신년초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정국은 「한보사건」이라는 태풍으로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을만큼 깜깜한 터널속에 갇혀있는 형국이다. 정치권이 총체적 방향감 상실과 무기력증에 빠져있는 셈이다. 신한국당 李會昌(이회창)대표위원도 10일 부산포럼 연설에서 『날개 없는 도덕성의 추락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며 『정치권의 표류는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끝이 안보인다』고 말했다. 방향감 상실증은 청와대가 가장 심각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공공연히 『무책이 상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흘러가는 대로 맡겨두자는 파장분위기마저 감돌고 있다. 金賢哲(김현철)씨 사법처리 후 대국민담화 등 수습책을 모색하던 청와대 움직임도 현재는 모두 멈춘 상태다. 현철씨의 각종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92년 대선자금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아예 손을 들어버린 것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다음에 또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데 섣불리 수습책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국민사과도 한두번이지 일이 터질 때마다 하기는 곤란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신한국당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당관계자들 사이에서 『도대체 당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불만과 함께 『당이 중심을 잃고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선을 의식한 당내 분란도 잠잘 날이 없다. 기약없는 정국표류는 정국운영의 두 중심축인 청와대와 신한국당의 정국통제력 상실에 기인한다. 『이제 정국은 정치권이 아니라 대검 중수부가 주도하고 있다』는 말에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다. 검찰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라 정국이 좌지우지되고 있는 게 사실이나 정치권은 아무런 제동기능을 갖지 못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이렇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대표가 지적한 대로 정치권의 도덕성 추락이다. 그로 인한 국민의 신뢰 상실로 현정권의 존립기반인 「문민정통성」이 뿌리부터 허물어지면서 리더십의 공동화현상이 초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정권에 대해 여권내에서조차 「뇌사상태」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도덕성 추락과 국민신뢰 상실 측면에서는 야권 또한 예외일 수 없다는 점에서 야권의 정국대응에도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현정권의 비리와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면서도 그에 따라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전개는 피하고 싶어하는 다소 이율배반적인 대응이 정국의 실타래를 더욱 복잡하게 얽히게 하고 있는 한 요인인 것이다. 한보부도 이후 정국표류가 4개월 가까이 지속되면서 정치권과 국민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으나 더욱 큰 문제는 뚜렷한 해법이 없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특히 현난국을 풀어갈 1차적인 책임이 김대통령에게 있는데도 김대통령의 현저한 위상하락이 해법 마련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즉 국면전환을 위한 김대통령의 능동적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잔여임기 9개월의 국정공백을 어떻게 추스르느냐가 정국해법의 최대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대로 더 방치하기에 9개월은 너무 긴 기간이나 달리 어쩔 도리가 없다는 현실이 정국불안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임채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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