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계기로 본 美청문회]『모른다』발뺌땐 처벌가능

  • 입력 1997년 4월 9일 08시 56분


미국의 의회 청문회는 증언자들의 입을 열게 하는데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단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서게 되는 사람이 위증을 하거나 알고 있는 사실을 감추기는 거의 불가능하게 돼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청문회의 위력을 가장 절감한 당사자 중의 하나가 한국정부다. 1976년 朴東宣(박동선)사건으로 당시 朴正熙(박정희)정권은 형언하기 어려운 신고를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하원 윤리위원회는 2년여에 걸친 끈질긴 청문회를 통해 「박동선씨가 미국정부의 주한미군 철수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미국의원들과 고위 관리들에게 1백만달러 상당의 뇌물을 주었다」는 사건의 진상을 파헤쳤다. 윤리위는 도피중이었던 박동선씨를 데려다가 증언대에 세웠음은 물론이고 주미대사를 지냈던 金東祚(김동조)씨로부터 서면 답변서를 받아내기 까지 했다. 박동선 사건을 기억하는 한국의 외교관들은 지금도 당시의 악몽같았던 청문회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미국의회 청문회는 크게 △입법 청문회 △심사 청문회 △조사 청문회 등 세가지로 나뉜다. 입법 청문회는 법을 만들기 위해서, 심사 청문회는 정부의 활동을 감시 감독하기 위해서, 조사 청문회는 심사 청문회의 결과에 따라 드러난 정부의 비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열린다.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역시 조사 청문회다. 닉슨대통령의 사임을 몰고온 73년 워터게이트사건, 87년 이란에 대한 무기 판매에서 나오는 자금으로 니카라과 콘트라 반군을 지원키로 했다가 말썽이 된 이란콘트라 스캔들도 모두 조사 청문회를 통해 그 비리의 실체가 드러났다. 진실규명은 증인들이 입을 열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청문회는 입을 열게 하기 위한 갖가지 제도적 장치를 가지고 있다. 증언자들이 진실을 밝힐 경우 제한적 범위 내에서 면책특권을 주기도 한다. 박동선씨가 바로 이 면책특권 아래서 증언했다. 또 증언을 거부할 경우 강제소환장이 발부되고 위증을 할 경우 의회모독죄로 기소된다. 청문회 제도의 핵심은 법적 장치가 아니라 청문회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이다. 청문회란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고 일단 청문회에 서면 진실을 밝힐 의무가 있다는 것이 미국인들의 공유된 인식이다. 이런 인식이 있기에 청문회를 준비하는 측이나 청문회에 나갈 사람이나 마음의 각오가 다르다. 워터게이트 청문회때 5개월에 걸친 사전 준비가 있었던 것이나 이란콘트라 스캔들 때에 상원의원 64명 하원의원 43명 등 의원만 1백명이 넘게 동원된 것은 한 예다. 조사기간도 길어 이란콘트라 스캔들 때는 15개월이 걸렸고 공개 청문회만 12주에 걸쳐 열렸다. 〈워싱턴〓이재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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