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회담 이후/정국방향]대화물꼬 불구 수습 역부족

  • 입력 1997년 1월 21일 20시 13분


「1.21」 청와대 여야영수회담은 당초 예상했던대로 지난해 말 노동관계법 개정안 등의 날치기처리 이후 빚어진 정국 파행사태를 일거에 수습하는데는 역부족이었다. 다만 상당히 장기화할 것으로 보이던 여야간 대화채널이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정도가 성과라면 성과였다.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은 이날 문제의 핵심인 노동법 안기부법 등을 국회에서 재론할 것과 민주노총 파업지도부 등 사전구속영장 발부자에 대한 영장집행 유예 의사를 밝히는 등 기존의 입장에서 상당히 후퇴한 자세를 취했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의 金大中(김대중)총재와 金鍾泌(김종필)자민련총재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몇몇 「기술적인」 접근방식으로 문제해결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날 「3김 대좌」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야권의 두 김총재는 이날 김대통령에게 노동법 등 날치기 문제 뿐 아니라 그동안 누적돼왔던 갖가지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제기했다. 반면 김대통령은 노동법과 관련한 사안에 대해서만 부분적으로 야권의 주장을 수용했을 뿐 △날치기 본회의의 무효화 △안기부법 문제 △대선에서의 중립성 △자민련소속 도지사 및 의원들의 탈당사태 등 나머지 사안에 대해서는 기존입장을 고수하며 일축했다. 이날 회담에서 몇몇 가시적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야권이 즉각 후속 여야대화에 나설 뜻을 밝히지 않은 것도 이같은 상황에 연유한 것이다. 더욱이 국민회의는 일단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했으나 공조관계에 있는 자민련이 『결렬됐다』면서 대여(對與)투쟁의 강도를 높여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혀 즉각 여야 대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희박한 상태다. 야권이 이처럼 김대통령을 향해 전례를 볼 수 없을만큼 전면적이고도 총체적인 공세를 펴고 나서는데는 여러가지 배경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은 지난 7일 연두기자회견에서 김대통령이 야권과의 대화를 한마디로 일축한 데 따른 감정적인 측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번 노동법 파동으로 인해 여권의 정치력이 한계를 드러냈고 따라서 밀어붙일 수 있을 때까지 밀어붙여도 별로 잃을 게 없다는 판단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또 모처럼 갖게 된 김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몇몇 문제를 매듭짓지 못할 경우 자신들의 진로를 개척해나갈 수 없다는 절박감도 회담 분위기를 지배한 것 같다. 이날 회담을 끝내면서 야당의 두 총재가 『더 생각해보고 다시 만나자』는 얘기를 남기고 청와대를 떠난 것에서도 이같은 정황은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아무튼 이날 회담이 단숨에 경색정국의 돌파구를 찾는 계기가 되지는 못했으나 일단 여야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자체는 평가할 만하다. 또 이번 사태의 직접 당사자인 노동계를 비롯, 사회 각계각층 등 여야 정치권을 에워싸고 있는 주변세력들의 동향도 향후 정국전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소 시간이 걸리고 진통은 겪겠지만 후속 여야대화를 통한 정국 타개 가능성을 완전히 포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金東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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