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97 선진정치/역대대선 공약점검]정책대결 거의全無

  • 입력 1997년 1월 3일 20시 38분


「李哲熙기자」 우리의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후보들이 내거는 「공약」은 사실상 「구색(具色)갖추기」나 「액세서리」에 불과했다. 지난 50년 가까이 대선은 「장기집권종식」 「군정종식」 등의 초(超)정책적 이슈에 의해 지배됐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직선이 시작된 2대에서 4대선거까지 李承晩(이승만)대통령의 장기집권이 계속되는 동안 대선에선 부정선거논란과 투쟁이슈들만 난무했을 뿐 공약다운 공약은 전무하다시피했다. 당시 선거판을 압도한 구호는 야당의 「못살겠다 갈아보자」와 여당의 「구관이 명관이다. 갈아봤자 별 수 없다」는 맞대응이었다. 3대 대선에서 민주당이 토지수득세폐지 사친회비폐지 특명융자금지 등을, 진보당이 평화통일 주요산업국유화 노동자경영참가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 공약을 내걸었으나 「실험」에 그친 정도였다. 5.16 이후 5대 대선에서 여야는 「조국근대화」와 「군정종식」의 구호를 내걸고 대결을 시작했으나 선거중반 공화당 朴正熙(박정희)후보의 여순사건 관련 사실이 폭로되면서 선거전은 「사상논쟁」에 휘말렸다. 6대 대선에서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공과(功過)를 다투며 경제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박정희후보는 빈곤퇴치와 소득증대를 외치며 근대화 완수를 주장한 반면 尹潽善(윤보선)후보는 「빚더미건설」이라고 공격했다. 7대 대선에서 공화당은 56개, 신민당은 1백55개 항목의 공약을 제시했지만 핵심이슈는 「안보논쟁」이었다. 신민당의 金大中(김대중)후보는 「4대국 보장론」을 제안하며 예비군폐지와 향토경비대설치 등을 주장했고 박정희후보는 북한의 남침가능성을 강조하며 위기론으로 맞섰다. 16년만에 직선제가 부활된 87년 대선에서 초반에는 「공약경쟁」의 조짐이 보이기도 했지만 선거전은 곧바로 민정당 盧泰愚(노태우)후보의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와 야권의 「군정종식」이라는 구호대결의 양상에 묻혀버렸다. 14대 대선은 각당이 체계적으로 정책공약을 제시하는 가운데 시작됐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비교가 되었다. 백화점식 선심공약도 많았지만 유권자들의 눈길을 붙잡는 정책들도 없지 않았다. 민자당의 金泳三(김영삼)후보는 「한국병치유」와 「신한국건설」, 민주당의 김대중후보는 「대화합의 시대」, 국민당의 鄭周永(정주영)후보는 「경제대통령」이라는 슬로건아래 제각기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종반전에 들어서면서 이른바 색깔론 시비, 부산 초원복국집사건으로 야기된 지역감정 자극 등으로 선거분위기는 또다시 혼탁해졌고 정책대결의 기미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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