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째 해커와 전쟁 ‘사이버수사의 대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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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치안대상 받은 양근원 총경
1994년 신종범죄담당으로 첫발… 컴퓨터범죄수사대 창설에 큰 역할
“정부기관 노리던 北 사이버테러… 작년부터 정보갈취 돈 요구로 진화”

양근원 과장(오른쪽)이 26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에서 열린 제10회 사이버치안대상 시상식에서 아내 이현주 씨 손을 꼭 잡고 수상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경찰청 제공
양근원 과장(오른쪽)이 26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에서 열린 제10회 사이버치안대상 시상식에서 아내 이현주 씨 손을 꼭 잡고 수상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경찰청 제공
핵폭탄보다 사이버테러가 더 무서운 시대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공격에 개인과 기업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 하지만 1994년 상황은 달랐다. 컴퓨터 보급은 활발했지만 ‘인터넷’은 생소했다.

양근원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장(54·총경·경찰대 2기)이 사이버수사를 시작한 게 1994년이다. 그해 양 과장은 경찰청 형사국의 ‘신종범죄담당’을 맡았다. 그는 ‘법화산’이라는 판례 검색 프로그램을 개발해 PC통신에 올릴 만큼 이미 컴퓨터에 능숙했다.

1997년 그는 신설된 경찰청 컴퓨터범죄수사대의 수사대장에 임명됐다. ‘PC통신 조금 한다’는 직원 10명이 팀원으로 합류했다. 양 과장은 “1997년을 기점으로 인터넷이 상용화돼 PC통신이 활발해지자 사이버도박과 음란 사이트, 해킹 범죄가 시작됐다”며 “전화선에 연결한 모뎀으로 인터넷을 쓰던 때인데 수사대 사무실에는 귀한 인터넷 전용선이 설치됐다”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공격이 활개 쳤다. 한국에서도 금융기관과 언론사 전산망이 디도스 공격으로 마비되거나 악성 해킹 프로그램이 유포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해외 사례를 연구하며 대비했던 양 과장은 그때마다 명쾌하게 사건을 해결했다.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국무총리 시절 경찰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양 과장을 놓고 “벤처기업에 뺏기지 말고 잘 관리하라”고 수뇌부에 당부했다.

2000년 7월 경찰청은 “사이버수사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양 과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사이버테러대응센터를 창설했다. 전국 지방경찰청에 사이버수사대를 창립했다. 컴퓨터에 능숙한 정보기술(IT) 전문가를 경찰로 특채하는 제도도 이때 만들어졌다

양 과장의 수사력은 세계적인 사이버범죄 전문기구 ‘인터폴 글로벌혁신단지’에서도 인정받았다. 그는 2013년부터 3년 동안 싱가포르에 본부를 둔 인터폴 디지털시큐리티센터 부국장을 맡았다. 당시 필리핀에서 활동하던 ‘몸캠 피싱’(알몸이나 음란행위 장면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은 뒤 협박해 돈을 뜯는 것) 일당 85명을 소탕했다. 유럽과 아시아 은행들을 떨게 했던 해킹그룹 ‘DD4BC’ 조직원 체포에도 일조했다.

요즘 양 과장이 가장 우려하는 건 북한발 사이버테러다. 갈수록 교묘해지는 탓이다. 북한 사이버테러는 2009년 7·7 디도스 공격과 2013년 3·20 사이버테러 등 공공이나 민간 기관 전산망을 마비시켜 핵심 정보를 빼내는 형태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사기업에서 빼낸 고객 개인정보로 돈을 요구하는 방식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양 과장은 “해킹 대상으로 삼은 기업 구성원의 개인정보까지 미리 파악하고 그에 맞춰 악성코드가 담긴 e메일을 보낼 만큼 치밀해졌다”고 말했다.

양 과장은 23년간 사이버수사 외길을 걸어온 공로를 인정받아 26일 제10회 사이버치안대상과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그는 “1997년 고작 10명으로 시작했던 사이버수사요원이 지금은 전국에 1500명이 넘을 만큼 많아진 걸 보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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