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동물에 새 생명 불어넣는 ‘신의 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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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사 공무원’ 류영남 주무관

2일 인천 서구 국립생물자원관 수장고에서 박제사 류영남 주무관이 직접 제작한 박제를 가리키며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인천=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일 인천 서구 국립생물자원관 수장고에서 박제사 류영남 주무관이 직접 제작한 박제를 가리키며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인천=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당장이라도 텀벙 하고 바닷속으로 뛰어들 것처럼 앞발을 내민 큰바다사자의 모습은 생동감이 가득했다. 흔치 않은 한국 자생종인 이 큰바다사자는 2012년 2월 제주 비양도 앞바다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두피가 찢어지고 살은 부패했지만, 그의 손을 거쳐 ‘제2의 생명’을 얻었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의 류영남 주무관(49)이다.

류 주무관은 국내 유일 박제사 공무원이다. 인천 서구 국립생물자원관이 보유한 동물 박제 1000여 점을 모두 그가 만들었다. 2005년 국립생물자원관이 개관하며 ‘박제사계에 재야의 고수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환경부 공무원들이 직접 그를 초빙해 이 자리에 오게 됐다.

그는 2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중학교 2학년 때 박제의 길에 들어선 사연부터 설명했다.

“그때 아끼던 새 두 마리가 죽었어요. 박제 기술을 취미로 배우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 박제를 부탁했더니 ‘직접 해보라’고 하더군요. 그게 시작이었죠.” 그때부터 자주 가던 반려동물 가게에서 박제를 배우기 시작했다.

집안 반대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류 주무관은 부모 몰래 옥탑방에 작업실을 꾸미고 반려동물 가게에서 나오는 사체를 받아 박제를 연습했다.

결혼하면서 횟집을 시작했지만, 꾸준히 들어오는 박제 요청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환경부의 제안을 받아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박제된 동물 중에는 밀렵 등 불법적인 경로로 인한 게 적지 않은데 자원관에서는 ‘로드킬’처럼 사고사한 동물의 사체를 받아 살아 있을 때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라 하더라고요. 그 취지가 가장 마음에 들어 이 길을 택했죠.”

그는 문화재 수리 기능 자격증이 있는 정식 박제사다. 동물 사체가 들어오면 깨끗이 닦은 뒤 최소 부위만 절개해 가죽을 벗긴다. 사고로 훼손된 가죽을 봉합하고 준비한 모형에 붙인 뒤 눈과 같은 액세서리를 더하면 완성이다.

매년 자원관으로 들어오는 동물 사체는 100마리 정도다. 류 주무관은 가능한 한 이들 모두 박제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더 살 수 있었던 생명인데’ 싶어서 참새든 멸종위기종이든 똑같이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류 주무관은 말했다.

“박제할 때 그 동물이 삶에서 가장 역동적이었던 때를 구현하려고 애써요. 그들이 못다 한 생을 그렇게나마 보여주고 싶거든요. 동물들도 그걸 원할 거 같아요.”

자원관을 나서는데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때 이곳으로 와서 류 주무관이 직접 검은 기름을 닦아내고 생전 모습을 재현한 바다비오리와 검은목논병아리가 힘차게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류 주무관이 최근 제작한 박제 20여 점은 23일부터 2018년 3월 31일까지 자원관에서 열리는 ‘찾아라 우리 생물’과 ‘지켜라 지구 생물’ 기획전에서 볼 수 있다.
 
인천=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박제사#류영남 박제사#국립생물자원관#찾아라 우리 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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