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귀국영상 보고 영화 만들기로 결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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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덕혜옹주’ 허진호 감독
“쉰 살 덕혜와 백발의 상궁 재회,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고 싶어”

구부정한 허리, 초점 없는 눈동자의 한 여인이 부축을 받으며 걸어 나온다. 백발의 상궁들은 그 앞에 엎드려 오열한다. “이제 오셨습니까! 아기씨.” 하지만 37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여인은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영화 ‘덕혜옹주’(3일 개봉)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허진호 감독(53·사진)은 2007년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 ‘한국사 전(傳)’의 ‘라스트 프린세스 덕혜옹주’ 편을 보면서 이 장면을 구상했다. 허 감독은 쉰 살의 덕혜옹주와 늙은 상궁이 재회하는 모습을 영화 속 최고 장면으로 꼽았다. 영화 ‘덕혜옹주’는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벌써 116만 관객을 모았다. 조선 고종의 고명딸인 덕혜는 열세 살에 일본에 끌려가 일본인과 정략결혼을 하고 정신병원에 갇히는 등 비참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덕혜는 비극적 운명의 개인이었을 뿐, 위인은 아니었다. 주어진 운명에 순응했던 덕혜가 과연 대중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까. 허 감독은 고민했다.

그는 “2009년 소설 ‘덕혜옹주’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걸 보면서 덕혜가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구나 싶어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고민이 많아서였을까. 시나리오도 많이 바뀌었다. 영화에서 덕혜의 약혼자이자 독립운동가, 훗날 덕혜를 귀국시킨 기자로 나오는 김장한(박해일)이 그렇다. 실제로 옹주와 약혼했던 김장한, 그의 형으로 서울신문 기자가 된 김을한,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청천 장군 등 세 명을 ‘김장한’이라는 한 인물에 녹였다. “김장한의 시점에서 풀어 나간 영화였기에 그를 좀 더 극적인 인물로 만들었어요.”

덕혜와 김장한의 로맨스는 많이 덜어 냈다. 역사의 한 순간이 사랑 이야기로만 읽힐까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키스신도 편집했다. 독립군 비밀 가옥까지 쫓아온 일본군을 피해 도망가는 덕혜가 장한을 다시 만나지 못할까 아쉬운 마음에 입을 맞추는 장면이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 ‘봄날은 간다’(2001년), ‘외출’(2005년) 등 그의 영화는 늘 사람과 세월이 큰 축을 이룬다. 관계와 감정, 그것이 세월을 만나면 어떻게 변할까.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다.

“세월이 흐르면서 삶에 대해 깊은 감정이 생기고 관조적이게 돼요. 변화된 감정, 거기서 오는 슬픔을 제가 좋아합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덕혜옹주#손예진#허진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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