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상씨 “돼지의 날, 세번에 걸쳐 술을 빚지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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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해주’ 4代째 잇는 김택상씨 “기다림의 술, 이젠 美서도 찾아”

돼지의 날, 세 번에 걸쳐 빚는 술이 있다. ‘삼해주(三亥酒).’ 해일(亥日)마다 세 번 빚는다는 뜻에서 이렇게 부른다. 정월 첫 돼지날 멥쌀을 발효하고, 음력 2월과 3월 다시 찹쌀을 넣어 발효한다. 그리고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날릴 무렵 마신다. 이 술은 지금도 서울에서 맛볼 수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공방에서 만난 전수조교 김택상 씨(66·사진)는 삼해주를 ‘기다림의 술, 느린 술’이라고 했다. 김 씨는 제조 과정을 직접 보여주며 어떤 의미인지 설명했다. 공방을 가득 메운 항아리에서 술을 꺼내 증류기에 담았다. 증류기를 가열하자 알코올이 수증기처럼 피어오르고, 차가운 천장에 막혀 술방울이 됐다. 이 술방울이 하나둘 모여 삼해주가 된다.

김 씨는 어머니 이동복 씨(89)로부터 삼해주 만드는 법을 배웠다. 어머니에게는 시어머니가, 시어머니에게는 시할머니가 제조법을 전수했다. 1993년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8호로 삼해주가 지정되자 김 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삼해주 제조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김 씨는 “어릴 적 땅에 묻힌 술독에 퐁당 빠진 적이 있다”며 “그때부터 나는 술을 만들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웃으며 얘기했다. 어머니에게 그해 만든 술을 가져가면 “요즘엔 네가 낫다”는 칭찬을 듣는다고도 했다.

이제는 서울 강남이나 용산구 이태원 등지의 고급 식당에서 삼해주를 내놓고 싶다는 연락이 온다. 최근에는 미국 뉴욕의 한식당에서 삼해주를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제조시설 규모가 작아 직접 찾아오는 사람에게만 소량을 판매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시에서도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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