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엄마의 나라, 더 뜨거운 외가의 情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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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여성재단, 다문화 가족 79명 베트남 방문 지원

삼성생명과 한국여성재단의 ‘다문화아동 외가방문 지원사업’에 참여해 베트남 외가에 도착한 하영이네 가족.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베트남인 어머니 서진주 씨(32), 외할머니(72) 외할아버지(76), 아버지 임중식 씨(45), 하영(8), 아영(6) 자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삼성생명과 한국여성재단의 ‘다문화아동 외가방문 지원사업’에 참여해 베트남 외가에 도착한 하영이네 가족.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베트남인 어머니 서진주 씨(32), 외할머니(72) 외할아버지(76), 아버지 임중식 씨(45), 하영(8), 아영(6) 자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옹 응오아이(외할아버지)….”

여덟 살 초등학생 하영이(여)는 ‘외갓집’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지난달 23일 외할아버지를 마주했지만 호칭조차 생소하고 서먹서먹했다. 외가 가족들 모두 피를 나눈 혈육이지만 말이 통하지도, 얼굴을 기억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하영이 등 한국에서 3000여 km나 떨어진 ‘엄마의 나라’ 베트남을 찾은 13명의 아이들은 낯선 외가 생활을 시작했다.

○ ‘별에서 온 엄마’가 아니었다

하영이와 동생 아영이(6·여)의 외가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도 차로 한 시간 반을 가야 나오는 ‘박닌’ 지역의 시골 장터 내 골목에 있었다. 66m²(약 20평) 남짓한 집의 작은 앞마당엔 주변에 사는 20여 명의 일가 식구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이곳은 수시로 비가 내린 뒤 뜨거운 햇볕이 내리쫴 한국의 여름보다 훨씬 습하고 더웠지만 낡은 선풍기 몇 대가 전부였다. 외가 식구들 20여 명은 한국에서 온 귀한 손님을 맞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며 음식을 준비했다. 4년 만에 장인, 장모를 만난 하영이 아빠 임중식 씨(45)는 그제야 긴장이 풀린 표정이었고, 엄마 서진주 씨(32)도 부모님과 4명의 언니, 동생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오자 미소를 되찾았다. 한국말도 서툴러 한국에선 ‘별에서 온 엄마’ 같았지만 여기선 귀한 딸이었고, 든든한 언니였다.

잠시 후 하영이와 아영이는 사촌언니와 동생들의 손을 잡았다. “찌∼(언니).” “하영, 아영.” 아이들은 금방 친해졌다. 서로 한국말, 베트남말을 섞어 가며 마당을 뛰어다녔다. 돗자리가 깔린 나지막한 베트남식 침대는 함께 뒹구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됐다.

○ “다문화 아동은 글로벌 리더 될 행운아”

삼성생명이 한국여성재단과 함께 2007년부터 시작한 다문화가정 외가방문 지원사업은 지난해부터 아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지난달 23∼31일 스무 가족 총 79명이 베트남을 방문한 이번 행사엔 이화여대 연구팀이 참여해 한국 전래동화 이해하기, 베트남어 노래 부르기, 베트남 역사 퀴즈 맞히기 수업을 열었다. 두 문화의 공존지대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글로벌 리더’로서의 잠재력을 깨우자는 취지다. 수도 하노이를 방문한 하영이와 아이들은 베트남 정치지도자 호찌민 묘소와 그가 생활하던 생가를 찾았다. 베트남의 독립 과정과 한국이 참전했던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근·현대사도 배웠다.

인구가 1억 명에 육박하는 베트남은 지난해 한국과의 교역규모가 282억 원(9위)에 이른다. 한국·베트남 정부는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진행 중이어서 베트남이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시장의 교두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여성재단 조형 이사장은 “두 개의 전통과 문화가 함께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 생활하는 이 아이들은 특별한 아이이고 행운아다. 이들이 두 나라 문화를 잇고 나아가 서로 다른 인종과 문화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자부심의 ‘씨앗’을 품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베트남=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삼성생명#한국여성재단#다문화가정 외가방문 지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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