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은 나의 두 부모… 싸우면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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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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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국적 첫 도쿄대 정교수 강상중 박사 퇴임 강연

“민족주의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지정학적 관점에서 한국은 동북아시아의 중심이자 지역의 가장 중요한 허브다. 아시아에서 중국 러시아 일본 몽골과 모두 좋은 관계를 갖고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강상중 도쿄대 교수(63·사진)는 6일 도쿄대에서 학생과 한반도 관련 학자, 외교관 등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퇴임 기념 고별 강연을 갖고 “한국이 유럽의 베네룩스와 같은 역할을 동북아시아에서 해야 하고 그런 힘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지정학적 시야가 매우 좁다”며 “한국의 허브 역할은 지역의 긴장 완화로 이어져 한반도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재일교포 2세로 고물상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와세다대와 독일 에를랑겐대에서 정치사상사를 전공하고 한국 국적으로는 처음 1998년 도쿄대 정교수가 됐다. 2010년에는 도쿄대 현대한국연구센터 초대 센터장을 맡아 일본 내 한국 알리기에 선구적 역할을 해왔다. 부드럽지만 설득력 있는 그의 화법은 일본에서 ‘강 사마(樣·신이나 왕족 등에 국한해서 붙이는 극존칭)’ 열풍을 낳았고 펴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날 고별 강연에도 NHK 등 일본 미디어의 관심이 집중됐다.

강 교수는 도쿄대 정년이 2년 남았지만 다음 달 사이타마(埼玉) 현의 기독교계 대학인 세이가쿠인(聖學院)대로 적을 옮긴다. 그는 “국립대 교수직을 떠나 좀 더 자유로운 상황에서 한일 관계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은 날 낳아준 부모고, 일본은 날 길러준 부모”라며 “부모들이 싸우면 제일 괴로운 건 자식”이라고 덧붙였다.

강 교수는 “한국의 허브 역할을 일본이 이해하고 지원해야 한다”며 “그런 관점에서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의 정치적 전략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메이지 환상’에서 탈피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을 근대 국가가 시작된 영광의 역사로 생각하고 있지만 한반도를 식민지화한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남북 분단 상황이 해소되면 한반도가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허브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한국이 6자회담뿐 아니라 4자회담, 양자회담 등 중층적(重層的)인 대화의 틀을 앞장서 가동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닫힌 분단 내셔널리즘이 아니라 다국 간 지역주의 속에서 분단 상황을 해소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단기적으로 북한 핵을 둘러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로 긴장이 높아지겠지만 빠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에는 북-미 간 양자회담이 시작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경우 남북 정상회담과 북-일 정상회담도 뒤따를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한국의 대북 정책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크게 요동쳤다”며 “이는 북한 문제를 국내의 정쟁 도구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남북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통독 전 서독처럼 정치권의 대연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연에 앞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일본의 우경화와 관련해 국민 전체가 그렇다고 보기는 무리”라면서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뒤 일본의 과거사를 반성한 기존 담화를 부정하진 않겠지만 내용을 약화한 아베 담화를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일본이 현행 평화헌법을 개정할 가능성도 지적하면서 “이는 지역의 긴장을 높여 일본이나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강상중#도쿄대 정교수#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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