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공감Harmony]효자배우 차태현과 아버지, 父子가 가족으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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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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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끼’ 물려준 아버지, 투박해도 깊은 사랑을 보냅니다”

티격태격, 아버지와 아들은 신경전을 벌이기 일쑤였다. 그러나 요즘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아는 듬직한 아들은 누구보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다. 효자로 소문난 배우 차태현 씨가 아버지와 함께 사랑의 심벌을 만들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티격태격, 아버지와 아들은 신경전을 벌이기 일쑤였다. 그러나 요즘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아는 듬직한 아들은 누구보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다. 효자로 소문난 배우 차태현 씨가 아버지와 함께 사랑의 심벌을 만들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아들의 10대(1980년대)

아버지는 방송사(KBS) 직원이었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던 두 형님의 권유로 모아둔 돈을 투자했다. 하지만 6년 동안 흑자 한 번 내지 못했고 사업은 망하고 말았다. 빚이 쌓여 갔다. 성우인 어머니의 수입으로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월세 100만 원이 없었던 아버지는 공무원인 둘째 형님의 서울 개포동 작은 아파트로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들어가 더부살이를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톱스타가 된 둘째 아들과 영화 제작자로 성공을 거둔 큰아들은 당시 어린 나이에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평생을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살아온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아들과 함께 매일 가족예배를 드렸다. 예배 전후로 그날그날 자신들의 일상을 서로에게 들려줬다. 지금도 가계부를 쓰고 있는 어머니는 가끔 빨간 숫자의 빠듯한 살림살이를 두 아들에게 보여주곤 했다.

배우가 된 아들은 지금에서야 그것이 교육이었음을 깨닫고 있다. 그때는 주변의 다른 가정도 자신들과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많은 집안이 그렇지 못했다. 아들은 자신이 지금껏 작품활동을 잘 해올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집안 분위기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연기를 전공(서라벌예대)하며 배우를 꿈꾸었다. 성우로서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 역시 아들에게는 더없는 스승이 되어 주었다. 연극영화과(서울예대)에 진학하기 위해 아들은 어머니에게서 연기를 배웠고 아버지에게서 끼의 DNA를 물려받았음을 모르지 않는다.

○ 아들의 20대(1990년대)


배우인 아들은 1995년 KBS 슈퍼탤런트 선발대회를 통해 데뷔했다. 이후 몇 년 동안 단역의 세월을 보냈다. 1990년대 후반에야 비로소 주연배우로서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온전히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 무렵, 아들은 아버지의 작은 바람을 가끔은 거절할 수밖에 없는 곤혹스러움에 빠지곤 했다. 아버지는 봉사 및 선교단체 등 온갖 모임의 ‘장(長)’을 맡아 왕성한 사회활동을 펼치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를 통해 이미 유명해진 배우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아들은 주위의 그런 기대에 모두 응답할 수는 없었다. 온갖 인터뷰 요청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일들이 결국 부자지간의 갈등으로 번져 충돌로까지 이어지곤 했다. 충돌과 갈등의 횟수는 어쩔 수 없이 늘어만 갔다. 모든 일을 안으로만 삭히는 아들의 성격 탓이기도 했다.

그래도 아들은 더없이 외향적인 성격의 아버지를 이해할 줄 알았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아버지에게 “말은 ‘못 한다, 못 간다’ 하지만 속으로는 무척이나 고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고민과 고심은 갈등의 횟수만큼이나 깊고 잦았다. 가끔은 마음을 다친 것 같은 아버지 모습에 아들은 자신의 고집을 꺾었다. 그리고 어차피 아버지를 위한 일, 고민 끝에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 부러 가지 않아도 될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싫은 내색도 없이.

○ 아들의 30대(2000년대)


2001년, 아버지는 환갑을 맞았다. 아버지는 소박한 잔치를 꿈꿨다. 하지만 아들은 만류했다. “요즘 환갑잔치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10년 뒤 칠순잔치를 열어 드리겠다”고. 그렇게 부자(父子)는 또 신경전을 벌였다. 아버지는 말했다.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고. 네 큰아버지의 건강도 염려스럽다.”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였다. 아버지를 위해 잔치를 열었다. 500여 명의 손님을 초대했다. 잔치는 소박하지만 성대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너무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모습, 또 그렇게 즐거워하는 손님들. 아버지는 그때부터 내게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는 요즘 손주들과 친근하게 어울리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아들은 자신의 어릴 적, “아이를 그렇게 키우면 안 된다”며 친척들이 걱정을 내놓았을 때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린다. 손주들과 친구처럼 보이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아들은 자신 역시 그렇게 자라났음을 깨닫곤 한다.

아들은 술에 취하는 날, 서울 여의도의 아버지 집을 찾아 아버지와 어머니의 볼에 입을 맞추며 어리광을 피우곤 한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딸 같은 아들이었다.

그런 살가움을 이제는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는 아들은 정년퇴직 이후 쓸쓸한 아버지의 노후가 안타깝다. 꼭 한 번만이라도 왕성했던 아버지의 일을 되찾아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KBS 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의 ‘패밀리 합창단’ 단원을 꿈꾸실 때 아들은 크게 반겼다.

따지고 보면 아들은 한때 아버지의 방송 출연을 그리 마뜩해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거침없는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배우라는 일이 아니라면, 나서기를 싫어하는 아들은 어차피 자신 때문에 아버지의 존재까지 세상에 알려진 때. 굳이 방송에까지 출연하는 걸 반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정년을 맞아 또 다른 세상으로 나온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아들은 생각했다. “앞으로 15년은 더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환갑잔치에서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도 아들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

매주 화요일 녹화를 앞둔 아버지에게 아들은 최근 몇 벌의 옷을 장만해 드렸다. 평생의 직장을 떠나 내심 힘겨워 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투박하면서도 살갑게 전해 드리곤 한다.

서로에 대한 걱정과 염려.

부자의 대화는 그칠 줄 몰랐다. 조금은 퉁명스럽게 들리지만 아들의 말에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다. 아버지는 또 “내 걱정은 말라”는 말로 아들을 응원했다.

그렇게 부자는 서로에게 깊은 속정을 전하고 있다.

배우 차태현(36)과 아버지 차재완 씨(69)가 살아가는 법이다.

윤여수 스포츠동아 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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