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사교육-교사 불신… 南학교에 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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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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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교사 첫 공립교 ‘탈북학생 코디’ 이성희 씨

탈북교사 이성희 씨가 경기 안성시 삼죽초에서 탈북자 자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북한에서 국어교사였던 그는 이 학교 탈북학생 중에서 한글을 전혀 모르는 10여 명을 지도한다. 안성=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탈북교사 이성희 씨가 경기 안성시 삼죽초에서 탈북자 자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북한에서 국어교사였던 그는 이 학교 탈북학생 중에서 한글을 전혀 모르는 10여 명을 지도한다. 안성=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8일 오후 1시, 경기 안성시의 삼죽초등학교 도서관으로 1학년 학생 3명이 들어왔다. 모두 탈북자 자녀들. 중국에서 태어난 탓에 한국어는 전혀 모른다.

이성희 씨(39·여)는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아이들을 자리에 앉도록 한 뒤 능숙한 중국어로 한글 자모를 가르쳤다. 아이들은 공책에 ‘가나다라’를 써나갔다.

이 씨는 북한에서 13년간 국어교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탈북교사로는 처음으로 한국의 공립학교에 배치됐다.

그는 2006년 외화벌이 인력으로 중국에 갔다가 2010년 한국에 왔다. 교사 경력을 한국에서도 활용하고 싶었던 그는 정부가 탈북교사를 재교육하기 위해 설립한 ‘NK교사 아카데미’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가 교육생이 됐다.

처음에는 남한이라고 수업이 크게 다르겠느냐고 생각했지만 실제 초등학교 수업을 참관하고 충격을 받았다. 마트 전단을 이용해 어느 물건이 더 비싼지, 물건을 몇 가지 샀을 때 모두 얼마를 내야 하는지 배우는 수학 수업이었다. 이런 방식의 수업은 교과서만으로 가르치는 북한에서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북한과 크게 다른 남한의 수업방식을 본 뒤, 직접 학교에서 일하면서 차이를 체험해보고 싶어졌다. 바람대로 이 씨는 지난해 3월부터 삼죽초에서 학습능력이 부족한 탈북학생을 지도하는 ‘탈북학생 코디네이터’가 됐다.

삼죽초는 탈북자 정착지원기관인 ‘하나원’이 근처에 있어 탈북학생 위탁교육을 맡고 있다. 탈북학생은 3개월간 이 학교에 다니다가 부모와 함께 정착지로 이주한다. 지금은 전교생의 절반 정도인 73명이 탈북학생이다.

이 씨는 매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탈북학생들을 지도한다. 오전에는 일반학급에서 한국어를 몰라 조용히 있던 아이들도 이 씨를 만나면 신이 나서 수다를 떤다.

그는 “아이들의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게 제일 중요하죠. 그 다음엔 3개월 동안 자기 이름을 쓰고 말할 수 있게 하고 물건 사기, 버스 타기 같은 걸 알려주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1년간 현장에서 체험한 남한 교육은 북한과 너무나 달랐다.

“북에서 교사는 ‘직업적 혁명가’죠. 아이들은 교사가 하라는 대로 따라야 하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교사가 질문하면 북에선 손부터 들어야 하지만 남한 아이들은 자유롭게 대답하고 교사에게 장난을 치기도 해요. 모든 질문에 답이 정해져 있는 북한과 달리 답이 여러 개일 수 있다는 사실도 여기서 처음 알았죠.”

그는 북한 교육시스템에도 배울 것이 있다고 말한다. “북에는 학교폭력이나 사교육이 전혀 없어요. 교사의 권위가 높은 탓도 있지만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가 밀접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는 중학교 6년간(한국의 초등 5학년∼고1 과정) 담임교사가 바뀌지 않는다. 교사가 학생의 집안 내력까지 꿰고 있을 정도다. 이 씨는 “부모가 교사를 신뢰하니까 아이의 진로에 관한 모든 것을 교사와 상의한다. 그런데 남에서는 교사를 신뢰하는 부모가 많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또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일대일로 짝지어 숙제까지 같이 하도록 한다. “교사한테 배우는 것보다 또래끼리 배우는 효과가 더 좋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면서 남한에서 문제가 되는 ‘왕따’도 있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는 북한대학원대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탈북학생은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태어났거나 부모 중 한 명만 북한 사람인 경우 등 범위가 넓어졌다”면서 “이들을 위해 다양한 종류의 교재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안성=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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