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차례의 실패, 국내 18번째 신약 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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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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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표적치료제 ‘슈펙트’ 아시아 첫 개발… 일양약품 김동연 대표-조대진 박사

김동연 대표이사(오른쪽)와 조대진 수석연구원이 10여 년간 개발한 백혈병 치료제 슈펙트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이 약의 임상시험 과정에서 얻은 해외특허 등록증들이 등 뒤로 보인다. 일양약품 제공
김동연 대표이사(오른쪽)와 조대진 수석연구원이 10여 년간 개발한 백혈병 치료제 슈펙트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이 약의 임상시험 과정에서 얻은 해외특허 등록증들이 등 뒤로 보인다. 일양약품 제공
일양약품이 개발한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슈펙트’(성분명 라도티닙)가 5일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제조품목 허가를 받았다. 슈펙트는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표적항암치료제로 아시아에선 일양약품이 처음으로 개발했다. 국내 신약 18번째로 등록됐다.

슈펙트는 기존 백혈병 치료제 성분에 내성이 생겨 치료가 어렵거나 기존 약물에 치료효과가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2차 치료제’로 상반기에 출시된다. 이 약은 기존 약(한 알에 2만3000원)보다 20∼30% 낮은 한 알에 1만6100∼1만8400원으로 가격이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환자는 이 가격의 5%인 805∼920원만 내면 된다.

이 약이 환자에게 바로 사용되는 1차 치료제 승인을 받지 못한 것은 아직 최종 3상 임상시험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1차 약물로는 노바티스의 글리벡과 BMS의 스프라이셀이 있으며 슈퍼 글리벡으로 불리는 노바티스의 타시그나도 조만간 1차 약물로 출시될 예정이다.

슈펙트의 임상시험 결과 초기 반응도 및 약효의 효과율이 글리벡보다 높게 나타났다. 안전성 측면에서도 심장독성, 폐 부종 등 다른 약을 쓸 때 나타나는 부작용이 발견되지 않았다. 1차 약물로 인정받기 위해 지난해 8월부터 한국 인도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권 20여 개 대형병원에서 백혈병 초기 환자를 대상으로 3상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결과는 연말경 나온다.

슈펙트는 슈퍼와 퍼펙트의 합성어로 일명 ‘슈퍼 퍼펙트 글리벡’으로도 불린다.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43억 원을 포함해 총 150억 원의 임상시험 비용이 들어간 초대형 프로젝트다.

신약 개발의 주역은 일양약품의 김동연 대표이사(연구소장)와 조대진 박사(수석연구원), 60여 명의 연구원이다. 김 소장이 진두지휘했고 조 박사는 신약을 합성했다.

김 소장은 “10년 동안 510여 차례 신약을 합성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와 결국 성공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인센티브나 잔업 근무수당 없이 밤낮으로 고생한 연구원들에게 보너스를 두둑이 줘야겠다”며 웃었다.

다국적 제약사에 비해 임상경험이 적은 일양약품에 신약 개발은 버거운 일이었다. 새로 발견한 후보물질을 실험용 동물에 주입하면 독성 때문에 여지없이 죽어버렸다. 1만여 마리의 동물이 이렇게 희생됐다. 이들 동물의 혼령을 기리기 위해 위령제를 지내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

마음고생도 많았다. 2004년 연구실에서 510번째 신약 합성물질을 대량으로 만들 당시 연구실에 불이 났다. 애써 개발한 후보 신약이 타버렸다. 조 박사는 “510번째 후보 신약은 완성 직전 단계였다. 소화기로 불을 끌 때 느꼈던 허탈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날 술을 진탕 마셨다”고 말했다.

다행히 노하우까지 불에 타진 않았다. 결국 511번째 합성물질을 만들면서 슈펙트를 탄생시켰다. 김 소장은 “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데도 임상시험에 참여해 준 101명의 백혈병 환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면서 “이들에게는 약을 평생 무상 공급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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