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슨 사건 조사단 등 이끈 헨리 리 교수 한국서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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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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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에 등장하는 과학기술 실재 한국, 피고인 위한 법과학 힘써야”

5일 열린 국제학술포럼 특강에서 헨리 리 교수가 자신이 진상조사를 했던 케네디암살사건 진상재조사 경험 등을 털어놓고 있다.
5일 열린 국제학술포럼 특강에서 헨리 리 교수가 자신이 진상조사를 했던 케네디암살사건 진상재조사 경험 등을 털어놓고 있다.
미국판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건으로 유명한 1995년 O J 심슨 살인사건의 무죄 평결을 이끌어낸 주역 중 한 명인 뉴헤이븐대 헨리 리 교수(74)가 한국을 찾았다. 대만 출신 미국인인 그는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는 이 재판에서 120여 명으로 구성된 초호화 변호인단의 전문가 증인으로 참여해 무죄 평결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그는 심슨 사건 외에도 케네디암살사건 진상재조사위원회에 참여했으며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스캔들과 천슈이볜(陳水扁) 전 대만 총통 저격사건 등 세계적 의혹사건의 조사단을 이끈 세계 법과학계의 태두(泰斗)로 꼽힌다.

5일 충남 아산의 온양그랜드관광호텔에서 열린 순천향대법과학대학원(원장 김정식·전 경찰대학장) 주최 법과학 국제학술회의에서 특강을 하기 위해 방한한 리 교수는 ‘피고인도 접근이 가능한 법과학’ 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과학이 검찰이나 경찰 등 국가기관의 수사나 논리 도구로 독점된다면 그 폐단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한국도 국가 차원의 법과학은 발전했지만 피고인을 위한 법과학에 대해서는 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심슨사건은 법과학이 국가기관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바꾼 계기가 됐다”며 “심슨은 워낙 재산이 많고 유명하다 보니 법과학 서비스를 동원해 재판에 임했고 그 과정에서 과거 다른 사건의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들이 (국가기관에 의해) 얼마나 많이 감춰져 왔는지 드러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건 조사 초기에는 심슨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는 심증을 갖게 됐지만 합리적인 의심의 범위를 넘어설 압도적 증거가 없어 심증으로만 유죄를 단정할 수는 없었다”며 “우리는 실체적 진실과 밝혀낸 진실, 믿고 싶은 진실을 구분해야 하는데 정보를 제공하는 국가기관, 이를 인용해 보도하는 언론에 의해 판단력이 흐려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리 교수는 40권의 저서와 많은 논문을 냈으며, 동양 이민자 최초로 미국 코네티컷 주 경찰청장을 지내기도 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 스캔들 조사 당시에는 클린턴 측근의 죽음을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밝혀 공화당의 거센 공격을 받았지만 모니카 르윈스키의 드레스에 묻어 있던 정액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유전자를 확인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증거가 스스로 말하게 하라. 역사가 증명하리라’라는 자신의 법과학 경구를 재확인했다.

그는 “최근 CSI(과학수사대)가 드라마로 인기를 끌자 뉴욕타임스가 CSI 작가와의 공개 대담을 마련했다”며 “대담이 시작되자 그 작가는 ‘CSI는 허구이고 오락입니다. 거기 나오는 그럴듯한 모습은 헨리 리 박사 책에서 베낀 것’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대만 경찰 출신이어서 다른 법과학자와는 달리 현장을 많이 뛴 리 교수는 “CSI에 등장하는 과학기술은 다소 과장됐지만 실재하고, 그 드라마로 인해 과학수사에 대한 기대와 발전 노력이 커지고 있는 것은 긍정적 효과”라고 말했다.

아산=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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