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시각장애인 밴드 ‘4번 출구’의 희망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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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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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외울 때까지 듣고 연주 맞출 때까지 연습
어둠속에도 화합 찾는 우릴 보고 용기 얻기를

시각장애인 밴드 ‘4번 출구’가 지난달 27일 인천글로리병원에서 공연한 뒤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배희관 고재혁 윤형진 홍득길 한찬수 씨. 강남장애인복지관 제공
시각장애인 밴드 ‘4번 출구’가 지난달 27일 인천글로리병원에서 공연한 뒤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배희관 고재혁 윤형진 홍득길 한찬수 씨. 강남장애인복지관 제공
“많이 오셨나요? 첫 번째 곡 제목 뭔지 아시나요?” “불놀이야.”

“맞아요. 그럼 두 번째 곡은요?” “….” “아,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였는데 아무래도 오늘 오신 분들은 연배가 좀 있으신가 봐요. 곡을 골고루 선정했으니 끝까지 재미있게 들어주세요.”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 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윤도현밴드’의 ‘나는 나비’를 부르면서 배희관 씨(25)는 청중 쪽으로 다가가 머리를 흔든다. 베이스기타를 치는 윤형진 씨(28)는 시선을 천장으로 향한 채 다리를 흔들거린다. 드럼을 맡은 홍득길 씨(30)의 눈은 허공을 향했지만 손만큼은 분주하다.

청중이 박수를 친다. 배 씨 등은 사람들이 많이 왔음을 안다. 박수 소리는 청중의 수를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지난달 27일 오후 2시 인천 글로리병원.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밴드 ‘4번 출구’가 정신과 환자 70여 명을 대상으로 연 콘서트의 모습이다.

멤버 5명은 모두 1급 시각장애인이다. 이들은 2005년 복지관에서 악기를 배우며 만난 뒤 이듬해 밴드를 결성했다. 4번 출구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는 숫자 4를 장애인에 비유해 ‘어려움에서 빠져나가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는 의미다.

이들은 보지 못해서 오히려 더 잘 들을 수 있다고 믿는다. 리더 한찬수 씨(50)는 “악보를 볼 수도, 콩나물 머리(음표)를 그릴 수도 없지만 청각은 더 발달돼 있다”고 말했다. 홍 씨는 “연주할 곡이 정해지면 우선 수십 번씩 들으며 기타 드럼 베이스 등 자기가 맡은 부분부터 외운다. 그런 뒤에 다시 수십 번씩 맞춰본다. 오래 걸리고 원곡과 달라지기 일쑤지만 우리만의 화합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작곡도 수준급이다. 배 씨는 “악상이 떠오르면 녹음기나 휴대전화에 무조건 녹음하고 컴퓨터로 작업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든 5곡을 10월에 발표하는 첫 앨범에 수록할 예정이다.

이들에게 음악은 인생의 동반자다. 고재혁 씨(33)는 대학에 가서야 자신이 망막색소변성증임을 알았다. 절망했지만 노래하며 행복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 씨도 18년 동안 한국타이어에서 근무하다가 2003년 시력을 완전히 잃고 회사를 그만둔 뒤 기타를 치며 세상과 소통하게 됐다.

다행히 이들의 열정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악기나 자리를 옮기기가 힘들지만 강남장애인복지관의 정원일 씨가 3년 전부터 매니저 역할을 맡아 도와준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도 ‘장애인 창작 및 표현활동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복권기금을 지원한다.

고 씨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용기와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연말에는 시각장애인 자선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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