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란 테이블에 놓인 각종 북한 음식들에서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손님들에게 나눠줄 선물로 준비한 북한식 된장도 쌓여 있었다.
탈북 여성 박사 1호인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사진)이 30일 서울 종로구 종로3가동의 한 사무실에서 연 ‘능라전통음식문화평생교육원(능라교육원)’ 개원식은 그가 평소 외쳐온 ‘통일은 밥상에서부터’라는 구호가 실감나는 자리였다. 이날 개원식은 이 원장이 탈북자를 대상으로 요리 분야 취업 교육과 문화 강좌를 제공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에 나선 자리다.
“탈북자들이 남한에 와서 일자리를 얻겠다고 여러 교육과정에 욕심을 내지만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대학에서 조리실습을 할 때 믹서나 티스푼 같은 용어조차 못 알아들어 실습팀에서 왕따가 된 경험도 있고요. 그런 문제점을 보면서 먼저 온 탈북자가 나중에 온 탈북자들을 잘 가르쳐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원장은 “내 전공이 음식인 만큼 음식을 통해 탈북자들의 취업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음식은 남과 북이 서로의 문화를 배우고 알아가는 데 가장 좋은 매개체 중 하나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능라교육원은 북한특선요리과정, 북한연회요리과정 같은 요리강좌는 물론이고 남한생활문화정착, 스피치강좌 등을 포함해 모두 10개의 코스를 운영한다. 2∼6개월짜리 과정을 탈북자들은 무료로, 일반인은 15만∼30만 원에 들을 수 있다. 교육원의 이름인 ‘능라’는 서울의 여의도처럼 평양 대동강 가운데 있는 작은 섬 이름에서 따왔다. 이 원장은 “을밀대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경치 좋은 섬”이라고 소개했다.
1997년 탈북한 이 원장은 2009년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 탈북자들을 위한 사회적 기업인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을 설립했다. 탈북 여성들의 남한 정착을 위해 활동해온 점을 인정받아 지난해에는 미국 국무부가 전 세계 여성 지도자들에게 주는 ‘용기 있는 여성상’을 받았다.
이때의 인연 덕분에 마크 토콜라 주한 미국대사관 부대사가 이날 개원식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토콜라 부대사는 “미국 정부는 탈북자들에 대한 이 박사의 애정과 노력을 지지하고 이에 함께하고자 한다”며 “이런 교육기관이 앞으로 더 늘어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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