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국립박물관장의 딸, 그자리에 오르다

동아일보 입력 2011-02-09 03:00수정 2011-02-0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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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나씨 신임관장 임명
국내 최초로 부녀(父女) 국립중앙박물관장이 탄생했다.

신임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내정된 김영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60). 그는 초대 국립박물관장(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김재원 박사(1990년 타계)의 막내딸이다. 김 신임 관장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미술사를 전공했다. 김 신임 관장의 큰언니는 한국 불교미술사 연구의 권위자인 김리나 홍익대 명예교수(69). 박물관과 미술사 가족에서 대를 잇는 부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탄생한 것이다. 아버지가 1970년 박물관장을 그만둔 지 41년 만이다.

▼ 미술연구 父女有親 박물관장 父傳女傳 ▼


일제강점기에 독일에서 공부한 김 박사는 1945년 광복 직후 36세에 국립박물관장에 임명됐다. 박물관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에 초창기 한국 박물관의 기틀을 다져 나간 김 전 관장은 1970년까지 국립박물관의 수장으로 일했다.

동아일보 2009년 3월 26일자 ‘한국 박
물관 100년의 사람들’ 기획의 하나로
소개된 김재원 전 국립박물관장 기사.
큰 사진 오른쪽이 김 전 관장, 아래 사
진은 맏딸인 김리나 홍익대 명예교수.
6·25전쟁 등 수난기에 소중한 문화재들을 지켜내는 데도 그는 혼신의 힘을 다했다.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전 북한이 유물을 북으로 옮겨가려 하자 김 전 관장과 박물관 직원들은 ‘유물이 훼손되고 포장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며 3일 동안 불과 9점만 포장하는 등 지연작전을 펼쳤다. 포장 후엔 유물 기록을 빠뜨렸다며 포장을 푸는 일을 반복했다. 이러는 동안 국군이 서울에 다다르면서 북한군이 후퇴해 결국 유물을 구할 수 있었다. 같은 해 12월엔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넜다는 정보를 입수해 1·4후퇴 한 달 전 유물을 미군 트럭에 싣고 부산으로 옮겼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우리 문화재를 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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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관장은 우리 문화재의 해외 홍보에도 열성적이었다. 1957∼59년 미국 워싱턴국립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 8개 미국 박물관에서 금동반가사유상, 금관, 고려청자, 조선백자 등 유물 195점을 순회 전시했다. 우리 문화재의 첫 해외 전시였다. 이어 1961∼62년에도 영국 네덜란드 포르투갈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국보순회전을 열었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자란 김 신임 관장도 자연스레 미술사와 박물관에 빠져들었다. 아버지는 1남 3녀의 막내인 그를 특히 귀여워했다고 한다. 언니인 김리나 교수는 “유럽 등을 함께 여행하면서 미술관 박물관과 문화유적을 많이 답사했다. 동생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미술사에 입문했다”고 회고했다. 1970년 김 전 관장이 박물관을 퇴직하고 미국 뮬런버그대 초빙교수로 일할 때도 김영나 관장을 데리고 가 이 대학에 입학시켜 미술사를 공부하도록 했다.

1971년 미국 앨런타운미술관을 찾은 김재원 전
국립박물관장(왼쪽)과 막내딸인 김영나 국립중
앙박물관장 내정자. 사진 제공 탐구당
이후 김 관장은 오하이오주립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덕성여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며 서울대 박물관장을 지내기도 했다. 최근엔 한국 근대미술사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김 관장은 8일 통화에서 “너무 뜻밖입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청하자 부담스러운 듯 “아버님의 이름을 더욱 빛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만 말했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 내정자 △서울(60) △경기여고 △미국 뮬런버그대 미술사학과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미술사학과 석·박사 △덕성여대교수 △서양미술사학회 회장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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