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자유대한에 살고 싶었던 인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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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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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암동 6·25 반공포로촌의 마지막 생존자 이희수 옹

강제로 입대후 국군에 자수
수 용소선 “南가면 죽음” 협박

145명 모여 살다 죽고 흩어져
아내와 이 집서 끝까지 살거야

이희수 옹이 22일 반평생을 살아온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반공포로주택촌을 바라보고 있다. 낮은 판자지붕 뒤로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에 들어선 고층빌딩이 보인다. 홍진환 기자
이희수 옹이 22일 반평생을 살아온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반공포로주택촌을 바라보고 있다. 낮은 판자지붕 뒤로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에 들어선 고층빌딩이 보인다. 홍진환 기자
서울 마포구 상암동 2번지. 디지털미디어시티(DMC)의 반짝이는 고층 건물 뒤편에 아직 남아 있는 ‘반공포로주택’의 주소다. 6·25전쟁 때 잡혔다가 남한을 선택한 반공포로들은 1957년경부터 당시 시유지였던 상암동 일대에 모여 살았다. 마포구청은 현재 이 일대 약 1915m²(약 580평)에 45채가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1일 찾아간 반공포로촌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꽉 차는 좁은 골목들로 나뉘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곳 반공포로들도 대부분 사망하거나 이사했다. 이제 남은 실제 반공포로는 이희수 옹(89)뿐이다. 이날 집 앞 골목에서 만난 이 옹은 오른팔에 너덜너덜한 파스 두 장을 붙인 채 리어카에 실린 파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성인 남자 키보다 낮은 대문을 지나 들어선 이 옹의 집은 66m²(약 20평) 남짓했다. 작은 마루와 낡은 화장실, 방 2개가 전부였다.

38선 이북이었던 경기 장단군 강산면이 고향인 그는 21세 때인 1942년 서울로 와 미장일을 배웠다. 1년 뒤엔 일본 도쿄(東京)로 건너가 악착같이 돈을 벌어 고향 땅에 논과 밭을 샀다. 기쁜 세월도 잠시. 갑작스레 공산 세력이 들이닥쳐 재산을 몰수했다. 29세가 되던 1950년엔 총을 든 군인들이 찾아와 전쟁에 합류하지 않으면 ‘반동분자’라고 몰겠다고 해 어쩔 수 없이 인민군에 입대했다. “인민군이 대구 팔공산까지 내려갔다가 한창 후퇴할 때였어.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더는 고향에서 못 살 것 같아 강원 평강군에서 국군에 자수했지.”

자수를 결심한 이유는 한 가지뿐이었다. “자유가 없는 땅에선 더 살고 싶지 않았어.” 그는 이후 거제도수용소에서 2년을 보냈다. 전쟁터를 벗어났다고 해서 안전을 보장받은 건 아니었다. “인민군 대대장 출신들과 한방을 썼어. 밤마다 나보고 남한행을 선택하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더라고.” 당시 수용소 안에서는 반공포로와 친북포로들 간의 칼부림이 잦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겨우 목숨을 건진 그는 부산포로수용소에서 진행된 포로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남한행을 선택했다. 자유는 되찾았지만 가족과 재산 모두 두고 온 탓에 1953년 석방 이후 당장 갈 곳도 막막했다. 품이나 팔고 살자는 생각으로 찾아간 곳이 지금의 은평구 수색동. 동네 부잣집에서 3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면서 부인 장경규 할머니(75)를 만나고 아들도 낳았다. 큰아들이 첫돌을 갓 넘겼을 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상암동에 반공포로들이 모여 살 수 있는 단지를 만든다고 했다. 이 옹은 목수 경력을 살려 공사에 자원했다. 자신의 집을 포함해 총 7개동을 직접 지었다. 같은 반공포로 출신인 김광수 옹(78)도 1958년경 이곳에 정착해 50여 년을 살다 최근 인근으로 이사했다. 그는 “수용소에서 나온 젊은 반공포로가 갈 곳이 없어 세종로 한복판 천막 안에서 먹고 잤다. 그러던 중 자유당에서 반공포로청년자활회 측에 집을 주겠다고 제안해 상암동 반공포로주택 1462번지로 이사했다. 당시 기억에 윗동네에 9개동 45가구, 아랫동네 50개동 100가구로 나뉘어 반공포로 총 145명이 모여 살았다”고 증언했다.

현재 반공포로주택에서 부인과 살고 있는 이 옹은 앞으로도 이사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전쟁이 끝나고 정부가 준 게 딱 두 가지야. 이 집,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이 준 금배지. 금배지는 잃어버려서 이제 남은 건 집뿐이야.”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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