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년 전 혜초 루트 복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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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30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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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폴로는 미지의 세계 동방으로, 명나라 정화 원정대는 인도양으로 ‘탐험’을 떠났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서양인들에게 동양에 대한 지적호기심을 충족시켜줬고, 정화 원정대는 인도양의 무역로를 개척해 명나라의 국력을 세계에 알렸다. 미지의 세계를 찾아, 혹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두려움 없이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혜초(慧(惠)超, 704~787)도 그랬을 것이다. 그는 이들보다 이미 500여년 앞선 8세기에 인도와 중앙아시아, 아랍을 여행하며 세계 4대 여행기로 꼽히는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이라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여행이나 탐험이 의미를 가지려면 ‘몸짓 이상의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인류학적인 발견이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종단 중인 탐험가 남영호씨
타클라마칸 사막을 종단 중인 탐험가 남영호씨
혜초가 걸었던 고대의 길을 찾아내 그대로 걸어 보려는 사람이 있다. 지난 10월 ‘죽음의 바다’라고 불리는 중국 타클라마칸 사막 450km를 세계최초로 단독 도보 종단했던 탐험가 남영호씨(33). 사하라 사막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사막인 이 오지에서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그가 위험한 ‘몸짓’을 감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타클라마칸은 그에게 미지의 세계였다. 3년 전 서른 즈음에 잡지사 사진기자를 그만둔 그는 1만8000km유라시아 자전거 대륙 횡단 길에 올랐다. 평소 꿈꿔왔던 탐험가의 기질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떠난 그의 첫 도전이었다. 그 길에 타클라마칸을 처음 만났다.

“너무 무서웠어요. 끝없이 이어져 넘실대는 사구의 결들이 마치 내가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느낌이었어요. 아주 넓은 곳에서 느끼는 고립감. 탐험가들은 항상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잖아요. 그래서 ‘아, 이것이 다음에 내가 도전해야 할 과제구나’ 싶었죠.”

유라시아 횡단에서 돌아온 그는 곧바로 다음 도전에 대한 준비에 들어갔다. 과제는 타클라마칸. 하지만 그냥 건너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에게 탐험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몸짓’ 이상의 메시지와 의미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크로드와 고대문명 교류에 관한 책을 읽다보니 어느 날 혜초가 불쑥 튀어나왔어요. 그리고 ‘왕오천축국전’을 알게 됐어요. 그런데 이분이 책에서 타클라마칸 사막 북쪽 끝과 남쪽 끝 마을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그때 당시 그 사막을 어떤 경로로 건너셨는지는 알 길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는 혜초의 타클라마칸 사막 종단 경로를 복원해 보기로 했다. 방대한 사료들을 참고해가며 현재의 위성사진과 대조해 혜초가 갔을 법한 경로를 지도와 머릿속에 그렸다.

“사막을 건너려면 물이 반드시 필요한데 타클라마칸 사막 한 가운데로 호탄강이 흐르거든요. 그 중간에는 고대 도시의 유적도 남아있고요. 그래서 그 분도 그 길을 따라 갔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종단 경로를 그렸죠.”

혜초는 첨단 장비도 없이 지형지물과 구전에 의지해 도보로 직선거리 450km의 사막을 건넜을 것이다. 하지만 1300년 후 다시 그 사막에 선 그도 혜초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탐험을 시작도 하기 전에 중국 공안에 GPS(위성항법장치)를 빼앗겼다.

“나침반과 지형지물만 이용해야 했어요. 나침반도 첨단 장비도 없는 혜초가 건널 당시에는 저보다 더 힘들었겠죠. 하지만 사막에 홀로 선 외로움은 엇비슷하지 않았을까요?”

타클라마칸 이동 경로
타클라마칸 이동 경로
지난 10월 3일 타클라마칸 남부도시 호탄을 출발한 그는 혜초의 뒤를 따라 하루 평균 직선거리 25km이상을 걸었다. 실제 걸은 거리는 세배 이상. 그리고 마침내 21일 북쪽 사막의 끝에 도착해 탐험의 성공을 전했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단독으로 도보 종단한 것은 세계최초였다.

탐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불과 4년 남짓. 그의 탐험 이력은 쟁쟁한 탐험가들에 비하면 미약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경로를 복원하는 것이다.

“타클라마칸은 전체 프로젝트의 첫 번째 구간이었습니다. ‘왕오천축국전’의 전 구간을 도보로 갈 생각입니다. 첫 도전에 성공했으니 나머지 도전들도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입니다.”

생애 첫 탐험 길에서 타클라마칸을 만나 혜초를 알게 된 남영호씨. 운명 같은 만남이지만 사실 그도 이전에는 혜초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역사적 탐험가라고 하면 마르코폴로, 이븐바투타, 정화를 먼저 생각합니다. 저도 그랬고요. 하지만 타클라마칸을 만난 후 혜초를 알게 됐습니다. 혜초는 그들보다 몇 백 년을 앞서 글로벌화를 몸소 실천했던 분입니다. 우리의 위대한 선구자에 대해 왜 우리는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요?”

그는 1300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혜초가 걸었던 길을 따라 가 볼 생각이다. 자신의 탐험으로 탐험가 혜초와 탐험의 기록인 ‘왕오천축국전’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내년에 ‘왕오천축국전’ 경로의 시발점인 경주에서 그 첫 걸음을 내딛을 예정이다.

“전 구간을 사진으로 남겨서 ‘왕오천축국전’이 소장된 파리국립박물관 앞에서 전시회를 할 생각도 있어요. 우리 소중만 문화유산이 100년 넘게 다른 나라 박물관에 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혜초 스님은 제 탐험의 선배기도 한데 말이죠.”

‘낮선 곳에 가서 위험을 무릅쓰고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탐험의 사전적 의미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조사하고 연구하는 지적 호기심을 뺀 모험을 탐험처럼 이야기한다. 모험은 탐험의 일부일 뿐 전부가 될 수 없다. 그냥 ‘사서 고생하는 개인의 만족’에 불과할 수도 있다.


“탐험의 의미로 접근하려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남영호씨. 그래서 그의 ‘혜초 루트 복원 계획’이 신선해 보인다.

이철 동아닷컴 기자 kino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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