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당한 육영수 여사 부축했던 탁금선씨 별세

  • 입력 2009년 6월 8일 02시 50분


동아일보 1974년 8월 16일자 6면. 총에 맞은 육영수 여사를 부축해 서울대병원까지 안고 간 탁금선 여사의 사진이 실려있다. ‘상처눌러도 피는 계속흘러 말한마디 못하고 가쁜숨만’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동아일보 1974년 8월 16일자 6면. 총에 맞은 육영수 여사를 부축해 서울대병원까지 안고 간 탁금선 여사의 사진이 실려있다. ‘상처눌러도 피는 계속흘러 말한마디 못하고 가쁜숨만’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날 일’ 말씀하셨죠”

35년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가 저격을 당했을 때 바로 옆에서 부축해 병원으로 옮겼던 탁금선 씨가 현충일인 6일 별세했다. 항년 84세.

고인은 며칠 전까지도 1974년 8월 15일 그날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했다고 한다. 당시 광복절을 맞아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에서는 기념행사가 열렸다. 박 전 대통령과 육 여사가 행사장을 찾았다. 탁 씨는 독립투사였던 남편 고 박해근 씨의 부인 자격으로 초청을 받았다. 기념식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탕! 탕탕!’ 하고 한 발의 총성, 뒤이어 두 발의 총성이 더 울렸다. 단상에 앉아 있던 육 여사가 쓰러졌다. 느닷없는 총성에 경호원들도 몸을 낮추고 있을 때였다. 합창단 바로 뒤에 앉아 있던 탁 씨가 1m 넘는 높이의 단상으로 뛰어올랐다. 박 전 대통령이 나중에 “그 높은 데를 어떻게 단숨에 올라가셨소”라고 말할 정도였다.

병원으로 이동하던 중에 육 여사는 탁 씨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말 한마디 못하고 가쁜 숨만 내쉬었다. 탁 씨가 총상을 입은 부위에 손수건을 갖다대고 지혈을 했지만 피는 계속 흘렀다. 탁 씨는 입고 있던 한복 저고리 옷고름을 둘러매도 지혈이 되지 않자 곁에 있던 경호원의 넥타이까지 풀어 안간힘을 썼다. 피가 흥건히 묻은 탁 씨의 한복은 현재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에 보관돼 있다.

“아버지는 독립투사셨지만 어머니도 그에 못지않은 여장부셨습니다. 총성이 울리는 상황에서도 쓰러지는 육 여사님을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셨대요.” 7일 서울 보훈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를 지키고 있던 탁 씨의 외동딸 박경숙 씨(54)는 “숨을 거두시기 전까지도 정정하게 걸어 다니며 그날 일을 들려주시곤 하셨다”며 탁 씨를 회고했다.

박 전 대통령은 육 여사의 국민장을 치르고 난 뒤 탁 씨와 딸 박경숙 씨를 청와대로 불렀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이 저희 모녀를 맞았습니다. 장례가 끝난 직후였는데도 박 의원이 한복을 입고 육 여사의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죠.”

이날의 인연으로 박 씨는 은행에 취직했다. “박 전 대통령께서 대학에 가 공부를 하고 싶은지, 취직을 하고 싶은지 물으셨어요. 아버지가 안 계셔서 가정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주저 없이 취직하겠다고 했지요.”

박 씨는 “현충일이 되자 어머니가 거짓말처럼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으셨다. 이제 늘 그리던 국립대전현충원 아버지의 묘지 옆으로 가시게 됐다”며 고인의 영정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발인은 8일 오전 7시 서울보훈병원.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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