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90㎝ 몸무게 20㎏은 날 설명하는 2%일뿐”

  • 입력 2009년 5월 7일 02시 57분


숀 스티븐슨 씨(오른쪽)가 4월 시카고 화이트삭스 홈구장에서 시구를 한 뒤 투수에게 공을 건네고 있다. 야구장에서의 시구는 골형성부전증 환자인 스티븐슨 씨가 ‘해보고 싶은 일’ 목록에 적어놨던 것 중의 하나. 사진 출처 시카고트리뷴
숀 스티븐슨 씨(오른쪽)가 4월 시카고 화이트삭스 홈구장에서 시구를 한 뒤 투수에게 공을 건네고 있다. 야구장에서의 시구는 골형성부전증 환자인 스티븐슨 씨가 ‘해보고 싶은 일’ 목록에 적어놨던 것 중의 하나. 사진 출처 시카고트리뷴
‘골형성부전증’ 美스티븐슨 씨 장애인 희망 전도사 우뚝

출생 직후 의사는 그가 24시간 이상 생존할 수 없다고 했다. 목숨을 건진 뒤에도 걷거나 뛰지 못했다. 기침만 해도 갈비뼈가 덜그럭거렸고,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곧바로 뼈가 부러졌다. 짧은 두 팔은 정수리까지 닿지도 못한다. 키 90cm, 몸무게 20kg밖에 되지 않는 ‘난쟁이’를 사람들은 수시로 힐끗거렸다. 뼈가 계란껍데기처럼 쉽게 부서지는 희귀 유전병 ‘골형성부전증’을 앓는 숀 스티븐슨 씨(30)의 육체는 이처럼 생명의 끈을 이어가기에도 힘이 부쳤다.

하지만 이제 그는 미 전역의 장애인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스타 강연자로 우뚝 섰다. 육체적 장애를 극복한 자신의 경험을 나누며 격려하는 ‘희망 전도사’로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다. 장애아를 위한 특수 보육원과 여름 캠프를 세우는 활동도 시작했다. 지난주에는 그의 두 번째 저서가 출판됐다. 심리치료사이자 박사과정을 밟는 학생으로서 자신의 미래를 위한 준비도 착실히 해나가고 있다고 시카고트리뷴이 6일 전했다.

그는 “나는 자기 파괴와 자학의 욕구를 극복하고 내 삶을 껴안아 록 스타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말했다. 강연을 할 때면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강조한다. 그를 지켜본 사람들은 “자신의 힘든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통찰력과 내면의 평화를 갖춘 작은 거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늘 깁스를 한 채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하는 삶은 그를 예민하고 우울한 소년으로 만들었다. 좌절에 빠져 있던 그를 바꾼 것은 “너의 질병이 인생의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축복의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열 살 때의 어머니의 한마디.

“너의 병은 인생의 짐이 될수도 축복의 선물이 될수도 있단다”

어머니 한마디에 희망을 발견

가족의 격려와 지원도 큰 힘이 됐다. 그의 부모는 계란삶기용 초시계를 이용해 그가 자기 연민에 빠지는 시간을 하루 15분으로 제한하는가 하면 핼러윈 파티 때마다 “너의 외모는 최고의 분장”이라고 격려하며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그가 고통에 시달릴 때면 좋은 기억들만 떠올리도록 옆에서 도왔다. 그가 할 수 없는 것은 과감히 포기하고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가족의 지원에 힘입어 그는 11세 때부터 골형성부전증 환자를 위한 대변인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디폴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인턴으로 일하기도 했다. 이제는 그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며 방송 제작자들이 줄지어 찾아오는 유명 인사로 자리 잡았다.

그는 바닥에 붙다시피 휘청거리며 걷는 자신의 걸음걸이가 “펭귄 같다”는 농담도 서슴없이 한다. 자동차를 탈 때면 유아용 카시트를 이용하고 엘리베이터 버튼조차 지팡이가 있어야 누를 수 있지만 항상 웃는 표정이다. 그는 “90cm의 난쟁이 외형은 나를 설명하는 2%밖에 되지 않는다”며 “나는 내 능력 이상으로 통 크게 노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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