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장애인경기 펜싱 金-銅‘부부검객’ 김기홍-이유미씨

  • 입력 2006년 11월 3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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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아시아태평양장애인경기대회가 열린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OCM 실내경기장. 애국가와 함께 태극기가 올라가자 1등 시상대 위의 휠체어를 탄 남성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시상대 맞은편. 휠체어를 탄 한 여자 선수도 그를 보며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한국 휠체어펜싱 사상 최초로 외국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에페 개인)을 딴 김기홍(35·척수장애) 씨. 함께 눈물을 흘린 여성은 그의 부인이자 이번 대회 플뢰레 개인전 동메달을 딴 이유미(26·절단장애) 씨다.

김 씨는 2002년 공장에서 작업 중 기계에 눌려 척추를 다쳤다. 두 다리를 쓸 수 없게 됐지만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태권도 선수였고 특전사에서 태권도 조교까지 했던 그는 고향 선배의 권유로 펜싱을 시작했다.

어릴 때 사고로 다리가 절단된 이 씨는 휠체어농구, 역도 등 다양한 종목을 섭렵한 스포츠 마니아.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를 앞두고 연습생으로 펜싱을 시작한 이 씨는 자신에게 맞는 운동뿐 아니라 짝까지 만나게 된다.

3년간의 열애 끝에 지난해 10월 가정을 꾸린 두 사람은 이번 대회에선 나란히 메달까지 따는 기쁨을 맛봤다.

장애인 펜싱은 휠체어를 고정하고 발동작 없이 몸의 움직임만으로 겨룬다. 도망갈 수가 없기 때문에 팔 동작이 빨라야 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함께 장애인올림픽이 열리면서 한국의 장애인 체육은 본격적으로 태동했다. 하지만 여전히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특히 국제대회는 선수들이 자비로 출전해야 해 참가를 포기한 적도 많았다. 그나마 지난해 11월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설립된 뒤 국가 지원이 늘어 이번 대회에는 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목이 실업팀 하나 없어 선수들은 ‘생계’가 가장 큰 문제다.

펜싱도 마찬가지. 펜싱대표팀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경기 고양시 홀트체육관에서 40일간 합숙훈련을 했다. 최일주 감독은 부부라고 예외를 두지 않았다. 숙소도 따로 쓰게 했다.

최 감독은 “훈련 중간이나 이후에 서로 챙겨 주는 것은 못 본 척했다”며 “두 선수가 프로정신으로 연습에 몰두해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김 씨는 “나는 하반신이 마비돼 힘든 게 덜했지만 대퇴부까지 절단된 아내는 감각이 남아 있어 무척 힘들어했다”며 “그래도 옆에서 아내가 아파하면 주물러 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또 그는 “아내와 훈련파트너로 함께 운동을 하니 정말 좋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 주고 함께 배워 나가며 많은 도움이 된다”며 “이제 2세도 서서히 준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말에 옆에서 수줍게 웃던 이 씨는 “이제 펜싱에 자신감이 붙는다. 운동에 좀 더 주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12월 3일 귀국하자마자 병원을 찾아 임신 가능 여부를 검사받을 예정. ‘2세’라는 소중한 꿈에 더해 둘은 입을 모아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다”고 다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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