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차명석 “패전의 추억담 야구해설에 담았죠”

  • 입력 2003년 9월 28일 17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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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글러브와 마이크는 제 인생의 동반자죠.” 현역투수에서 미국 메이저리그 해설가로 변신해 걸출한 입담을 뽐내고 있는 차명석 MBC ESPN 해설위원이 방송 스튜디오에서 활짝 웃고 있다. -박주일기자
“야구 글러브와 마이크는 제 인생의 동반자죠.” 현역투수에서 미국 메이저리그 해설가로 변신해 걸출한 입담을 뽐내고 있는 차명석 MBC ESPN 해설위원이 방송 스튜디오에서 활짝 웃고 있다. -박주일기자
MBC ESPN 프로야구 해설가 차명석(車明錫·34)씨. 그는 주연보다는 조연에 가까운 프로야구선수 출신이다. LG 트윈스의 선발 및 중간계투 요원으로 10년간 활동하며 거둔 성적표는 38승 37패(19세이브). 아슬아슬하게 패보다 승이 많은 그 성적이 그의 야구인생을 대변하는 셈이다.

하지만 야구해설가로 변신한 지금 그는 야구가 ‘패자(敗者)의 게임’이기도 하다는 것을 절절한 체험담으로 녹여내고 있다. 국내 어느 해설가에게서도 들을 수 없었던 그의 ‘회고록’형 해설은 인터넷상에서 ‘차명석 어록’으로 회자될 정도다.

예를 들어 대형홈런이 터졌을 때 캐스터가 “현역시절 경험했던 기억나는 홈런이 있느냐”고 질문하면 “장종훈 선수에게 엄청 큰 홈런을 맞았는데 아마 아직도 날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기억나는 올스타전 추억”을 물으면 “올스타로 뽑힌 적이 없어 그 기간엔 늘 가족들이랑 여행했던 기억이 많다”고 말한다.

그는 선수시절부터 ‘변호사’로 불릴 정도로 언변이 뛰어났다. 그런 그를 눈여겨 본 허구연 MBC 프로야구 해설위원이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다.

“한창 운동하던 때여서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허 위원은 틈틈이 책 읽고 영어공부하며 해설가 수업을 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제 미래가 보였던 모양입니다.”

해설가로 2년째. 그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야구를 보는 ‘혜안(慧眼)’이 생겼다고 했다. “연간 국내외 야구 200여 경기를 해설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부가 됐어요. 초창기엔 메이저리그 영문 자료를 번역하느라 날밤을 샜지만 이젠 많이 익숙해졌죠.”

그는 자칭 ‘2류 투수’다. 그의 패자 옹호론에 따르면, 20승을 거두는 선발투수 못지않게 패전 게임을 무리 없이 마무리 짓는 선수가 팀에는 꼭 필요한 존재다. “제 평균 구속은 130km 대여서 느린공이 승부구였죠. 그래도 99년 중간계투요원으로서는 최초로 연봉 1억원을 받았어요. 야구를 뛰어나게 잘하지 못한 게 오히려 도움이 된 셈이죠.”

느린공과 절묘한 컨트롤로 ‘한국의 그레그 매덕스’라는 평가를 받은 그에게도 천적이 있었다. 바로 삼성의 양준혁 선수.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그의 공에 맞서 양준혁은 아래에서 위로 퍼 올리는 스윙으로 툭하면 홈런을 뽑아냈다.

반면 ‘홈런왕’ 이승엽에게는 홈런을 하나도 허용하지 않았다. 마음 편하게 무조건 아웃코스 끝으로 던지다 보니 볼넷 아니면 평범한 땅볼에 그쳤다는 것.

그의 최종목표는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이다. 왜 총재가 아닌 사무총장일까.

“총재는 대기업 총수나 정치인이 하거든요. 일단 외국에 나가 시야를 더 넓힌 뒤 최초의 현역 출신 KBO 사무총장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야구를 해본 사람이 야구 행정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차명석은 “예나 지금이나 죽을 때까지 야구와 살고 싶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튼실한 열매를 맺는 무화과 같은 그의 ‘인생극장’이 막 시작되는 듯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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