喜壽맞은 김수환추기경, 회고록 2권 출간

  • 입력 1999년 10월 18일 19시 55분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정신적 지도자의 한사람인 김수환(金壽煥)추기경이 희수(喜壽·77)를 맞아 두권의 책을 냈다. 한권은 김추기경이 만난 사람들에 대한 추억과 사제로서의 고뇌 등을 담은 명상록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고 다른 한권은 신앙에 대한 고백서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도서출판 사람과 사람)다.

김추기경은 이들 저서에서 종교인으로서 민주화와 노동자의 인권옹호에 나서게 된 배경과 과정, 신앙인으로서 겪은 고뇌와 번민 등을 진솔하게 밝혔다.

69년 한국 최초로 추기경에 서임됐고 지난해 천주교 서울 대교구장에서 물러난 김추기경은 지난 세월 중 61년 5·16쿠데타부터 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설 때까지의 30여년간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장 힘든 순간들이었다고 회고했다.

▼교회 안팎서 압력도

그는 “가톨릭교회는 대체로 전통을 존중하고 현실참여는 극히 제한된 경우 외에는 피하는 보수적 성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관자로만 있기에는 사회현실이 너무 참담했다”고 밝히면서 “사회참여로 교회 안팎에서 많은 압력을 받았으며 이 때문에 밤낮으로 번민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67년 마산교구 주교 겸 가톨릭노동청년회 지도주교를 맡고 있을 때 부당해고된 노동자의 권익옹호를 위해 애썼던 강화도 ‘심도직물 사건’을 계기로 사회문제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인천교구장 나길모주교와 함께 주교회의에 이에 대한 조치를 건의했으며 68년 공식성명서가 발표됐다. 이는 한국천주교회가 사회정의와 노동자의 인권신장과 관련해 낸 최초의 성명서다.

71년과 72년 박정희정권에 반대하는 잇따른 천주교사제들의 시위와 성명서 발표 후 그에 대한 당국의 감시가 심해졌다. 74년 민청학련 사건 때는 김추기경이 직접 박정희대통령을 만나 구금됐던 지학순주교와 사형을 언도받았던 이철씨 등의 구명을 요구해 박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공권력투입 단호히 맞서

87년 6·10 민주항쟁 당시에는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인 학생들을 해산하기 위해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정부방침에 맞서 이를 저지한 일화도 털어놓았다.

그는 공권력 투입이 확정됐음을 전하러온 정부 관계자에게 “그렇게 한다면 맨 먼저 내가 거기 있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신부님들이, 그 뒤에는 수녀님들이 있을 것이고, 그 뒤에 학생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교회 안팎에서 “무엇 때문에 교회가 정치에 개입하느냐” “예수님과 복음을 빙자하여 말하지 말라” 등의 비난을 받았다고 밝혔다.

특히 “고향인 ‘TK의 아성’ 대구에서도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조차 나를 보는 눈이 곱지 않았고 대구가 마음에서 멀어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금은 모든 것이 예전처럼 되돌아갔지만 당시에는 “어떤 예언자도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예수님 말씀을 떠올릴 정도로 괴로웠다고 회고했다. 당시 사표를 내려고 교황에게 편지를 썼다가 찢기도 했다고 밝혔다.

▼끊었던 담배 다시 피워

김추기경은 무엇보다 괴로웠고 분노한 때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었다고 회고했다. 전두환전대통령 주한교황청대사 주한미국대사 주한미군사령관 등과 잇따라 접촉하며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실패했다는 것이다. 끊었던 담배를 이때 다시 피우기도 할 정도로 초조한 심정이었다고 했다.

때로 “권력과 허영으로 교회를 위태롭게 한다”며 유럽신문에 자신을 비난하는 글이 실리기도 하고 로마교황청에 국내 교회와 한국정부가 자신을 고발하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을 정도로 안팎의 압력이 심했다고 한다.

그는 신부가 된 이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산동네, 구호병원 등에서 일하고 싶은 소망을 지녔으나 실생활은 그렇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젊은 시절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여러 차례 기도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느님의 심판 기다려

이제 “하느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는 그는 여전히 ‘사랑의 노예’가 되고 싶어한다. 요즘 그의 기도는 통일에 모아져 있다고 한다.

“저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사오나, 교회를 위해 또 우리 나라를 위해, 통일을 위해 희생의 제물이 될 수만 있다면…. 저를 바칠 마음의 뜻은 있습니다. 막상 그런 고통을 당하면 마음이 흔들릴지 모르오니, 끝가지 항구하도록 주님이 잡아주십시오!”

〈이원홍기자〉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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