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회장 방북]『소 1천마리는 先親께 드리는 선물』

  • 입력 1998년 6월 16일 19시 30분


가난이 싫어 소 판 돈을 훔쳐 가출했던 17세 소년 정주영. 그로부터 66년 후 한국 제일의 부자가 돼 고향 통천에 소를 되돌려주는 방북길에 올랐다.

16일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한 정주영(鄭周永·83)현대명예회장은 “한마리 소가 1천마리 소가 되어 그 빚을 갚으러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아가는 것”이라며 감격했다.

지금은 북한땅이 된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 소년 정주영은 소학교를 마친 이듬해부터 감나무가 많아 아름다운 고향 통천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가 부친이 소 판 돈 70원을 가지고 서울로 온 것은 32년 세번째 가출 때. “서울엔 전문학교까지 나온 실업자가 들끓는데 보통학교밖에 못 나온 촌놈이 잘되면 얼마나 잘되겠느냐”는 부친에게 이끌려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열아홉살 늦은 봄 마지막으로 네번째 가출을 한다.

그가 서울에서 자리잡게 된 것은 인천부두, 보성전문학교 신축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신당동 쌀가게 주인의 눈에 들어 쌀배달을 하면서부터.

이때부터 맹렬한 속도로 사업을 확장, 재계1위의 현대그룹을 일궈낸 그는 어린 시절 그토록 벗어나려 했던 고향 통천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친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 ‘이땅에 태어나서’에서 서산농장의 소 1천7백마리를 바라보며 사부곡(思父曲)을 불렀다.

‘아버님은 농사지으시고 화전을 일구시는 한편으로 소도 열심히 키우셨다. …그 옛날 손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돌밭을 일궈 한뼘 한뼘 농토를 만들어가며 고생하셨던 내 아버님의 인생에 꼭 바치고 싶었던, 이 아들의 때늦은 선물이다.’

결국 그가 북한에 소를 선물한 것은 ‘찢어지는 가난속에서 고향을 지킨 아버지’에 대한 ‘성공한 노동자 아들’의 선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측근들은 이해하고 있다.

89년 처음으로 고향땅을 다시 밟았던 그는 고향을 떠나는 날 작은어머니에게 자신의 와이셔츠 한벌을 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깨끗하게 빨아서 저기 걸어둬요. 다음에 와서 입게”라고. 그리고 이제 그 약속을 지키게 된 것이다.

〈이영이기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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