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술보다 안주를 더 고민하는 이유[권대영의 K푸드 인문학]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18일 2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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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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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음식의 탄생과 철학을 연구하는 나에게도 한식은 고유성이 매우 강하고 독특한 음식이다. 서양 사람들은 우리가 지리적으로 보면 중국과 가깝기에 우리 식문화도 중국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하고 한국에 왔다가 한국 음식의 독특성에 매우 신기함을 느낀다. 중국 음식과 비슷한 점이 거의 없고 전혀 다른 식문화이기 때문이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우리나라 사람 네 명이 서양 레스토랑에 가면 메뉴판을 네 개 주는 것에 대해 신기해한다. 한식 식당에 가면 메뉴판을 한 개만 준다.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서양은 음식 문화가 발달해서 그렇고 우리나라는 서빙 문화가 발달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식문화 차이이지 서빙 문화의 세련도 차이가 아니다. 서양은 요리(dish) 문화이고 한국은 반찬(밥상) 문화이기 때문이다. 서양은 메뉴판의 음식을 시킬 때 무엇을 먹을까 이미 결정이 된다. 거기서 선택이 끝나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여 개인의 메뉴판을 네 개 내놓게 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식은 한 개의 메뉴판으로 음식을 시켜 놓고 최종적으로 음식이 나온 다음에 젓가락으로 반찬을 선택하도록 마지막 선택권을 보장해 준다. 그래서 메뉴판 하나면 충분하다.

수십만 년 전 인류의 이동 경로와 농경을 보면 서양에선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아나톨리아반도, 유럽 등에서 밀이 자라고 있었던 덕에 밀을 먹고 사는 농경과 식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나라는 요하 문명을 기반으로 고조선을 포함한 한반도에 단립종(자포니카)인 쌀이 먼저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쌀을 먹고 사는 농경이 발달했다. 밀가루로 빵을 만들 때는 어느 정도 점성이 강력해야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다. 밀가루의 글루텐이라는 단백질은 소금을 넣으면 점성이 더 강력해진다. 빵이 잘 만들어질 뿐만 아니라 소금이 들어가니 훨씬 맛있어진다. 빵 자체만으로 한 끼를 충분히 때울 수 있다. 그러나 쌀은 밥을 지을 때 소금을 넣지 않기 때문에 쌀밥만 먹어선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밥을 맛있게 먹으려면 어떤 다른 무엇의 도움이 필요하다. 즉, 반찬이다. 이 필요성이 밥상 문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밥을 잘 먹기 위해서는 밥이 잘 넘어가도록 도움이 되는 국(서양의 수프와는 개념이 다름)도 필요했고, 음식을 맛있게 내는 장(또는 장 요리)이 필요하며, 그리고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김치가 항상 함께해야 했다. 여기에 텃밭에서 나는 남새나 푸성귀로 나물 반찬을 곁들였다. 특별한 날은 물론이고 매번 고기(단백질) 반찬도 하나씩 올리려고 고민하였다. 이것이 대표적인 밥상 구조이고 한식의 뿌리다. 해방 후 시장이 발달하면서 여기에 올려지는 단백질 요리를 중심으로 K푸드가 하나하나 발전하기 시작한다.

한식에서 소비자의 선택권은 밥상에서 젓가락으로 반찬을 선택할 때 결정되는 것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식에만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밥상 구조를 이해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술을 먹을 때도 왜 그렇게 안주를 찾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술을 먹을 것인가보다 무엇으로 막걸리나 소주를 먹을 것인가 고민하는 이유를 말이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한국인#술#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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