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의 진료 거부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대통령실이 지난해 거부권을 행사했던 간호법 제정을 재논의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현재 임시로 의사 공백을 메우고 있는 진료보조(PA) 간호사들의 의료 행위를 합법화하기 위해 의료법 개정 외에 간호법 제정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대한간호협회도 간호법 제정을 다시 요구하고 나서면서 직역 간 갈등이 재연될까 우려된다.
간호법은 모든 의료인의 자격과 업무를 규정한 의료법에서 간호사만 떼어내고, 간호사 활동 영역을 병원에서 지역사회로 넓혀 놓은 법이다. 의사 위주의 의료법에서 독립하는 것은 간호계의 숙원이지만 “간호사만을 위한 법 제정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다른 보건의료단체의 반대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지난해 야당이 법안을 강행 처리하자 대통령은 “간호 업무의 탈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직역 간 과도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런데 법안 폐기 1년도 되지 않아 “지난해와는 상황이 다르다”며 입법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의료 수요의 변화와 간호사들의 전문성 향상에 따라 PA를 비롯해 간호사들의 업무 영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부는 지난해 간호법에 반대하면서 의료법의 전면 혁신을 통해 간호사들의 업무를 재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그동안 의료법 개정엔 손 놓고 있다가 간호사들의 도움이 절실해지니 간호법으로 할 수도 있다고 말을 바꾸고 있다. 정책의 권위와 신뢰야 어찌 되건 간호사들을 이용해 의사들의 기를 꺾어 놓겠다는 것인가.
의료대란을 앞두고 간호법 제정을 재추진할 경우 보건의료 직역 간 분란까지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4월 간호법 국회 통과 당시 의사협회뿐만 아니라 간호조무사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를 포함한 13개 보건의료 직역 단체들이 연가 투쟁과 환자 이송 업무 중단 등 단체행동에 들어갔다. 의사들이 병원을 떠난 상황에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간호사와 응급구조사들까지 반목한다면 의료현장이 어떻게 되겠나. 의사들과 대화 채널조차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또 다른 의료계 갈등을 감당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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