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공유
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브랜드가 ‘컬러’를 바꿀 때[패션 캔버스/박세진]

박세진 패션칼럼니스트
입력 2024-02-06 23:24업데이트 2024-02-06 23:24
읽기모드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고급 패션 브랜드는 자신을 각인시킬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한다. 로고와 폰트, 쇼핑백, 매장 인테리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피드까지 사람들의 감각이 닿는 부분이라면 무엇이든 통제하여 일관적인 이미지를 만든다. 구찌 제품을 구입했다는 걸 뽐내고 싶어도 사람들이 구찌를 모르면 소용없다.

특정 색상의 사용은 아주 전통적인 방식이다. 눈에 확 들어오기 때문이다. 에르메스의 오렌지나 티파니의 블루는 오랜 시간 브랜드의 ‘시그니처 컬러’로 사용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각인이 되었다. 사실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색과 브랜드를 연결한다는 건 무모한 일일 수 있다. 비용과 시간도 많이 든다. 그래도 연결이 잘되면 할 수 있는 게 아주 많아진다.

박세진 패션칼럼니스트박세진 패션칼럼니스트
시그니처 컬러도 있지만 최근에는 브랜드 변화를 알리기 위해 새로운 색상을 도입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구찌는 2006년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한 후 새로운 세대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기 위해 기존 시그니처 컬러인 레드와 그린을 밝은 느낌의 레트로풍으로 재구성하고, 스트리트 패션 스타일의 로고와 프린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러다 작년 사바토 데 사르노를 새로운 디렉터로 기용하면서 도시적 매력, 은근한 섹시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콘셉트만 바꾼 게 아니라 ‘구찌 로소’라고 부르는 새로운 색상의 앙코라(ancora·한 번 더)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전과 대비되는 이 어둡고 진중한 색상은 캣워크 위의 옷, 가방, 액세서리 안에 정교하게 배치되었고, 같은 색상의 광고, 매장 인테리어에도 반영돼 ‘새로운 구찌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직관적으로 알렸다.

버버리는 크리스토퍼 케인, 리카르도 티시에 이어 2022년 대니얼 리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전임인 리카르도 티시는 2018년 버버리 로고의 폰트를 현대적으로 교체하고 모노그램을 적극 활용했는데, 대니얼 리는 폰트를 다시 전통적인 분위기로 교체하고 대신 밝은 파란색을 전면에 내세웠다. 버버리의 기존 이미지와 전혀 다른, 낯설지만 상큼한 밝은 파란색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버버리가 시작되었다는 걸 알려주었다(사진).

이렇게 색상이 다시 활용되는 건 패션의 변화 덕분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간 고급 패션에서 바람막이와 스니커즈 같은 스트리트 패션이 주류를 이뤘고, 따라서 시그니처 컬러 같은 은은한 브랜드 각인 방식은 눈에 띄기 어려웠다. 더 자극적인 방식이 필요했기 때문에 커다란 로고, 프린트가 많이 활용되었다. 하지만 최근 패션에서 다시 조용한 럭셔리 등 섬세함,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생겨나면서 색이 돋보일 여건이 마련됐다. 발렌티노의 핑크, 보테가 베네타의 그린처럼 작은 규모로 색상을 쓰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미디어의 홍수 속 ‘과잉 트렌드의 시대’에 신선한 시사점을 던진다. 진중하고 은은한 브랜드 각인 방식의 재등장이 과잉 시대에 얼마나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패션 캔버스




박세진 패션칼럼니스트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