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가 가족에게 듣고 싶은 말[정경아의 퇴직생활백서]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28일 2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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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안절부절못하고 방황할 때
“수고했어” “괜찮아” “함께하자”
가족이 건넨 위로-격려-공감의 말
어깨 가벼워지고 두 발에 힘 생겨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이상하게 심장이 벌렁거렸다. 한겨울 추위까지 느껴져 으슬으슬 몸도 떨렸다. 두툼한 조끼를 입고 보일러 온도를 높여 보아도 좀처럼 오금이 펴지지 않았다.

해가 바뀌었으니 회사를 나온 지 석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종일 집에 머물면서 잡념에 사로잡히는 일이 전부였다. 지난 과거를 회상하며 온갖 고뇌에 빠지는 사이 가슴속은 더욱 황폐해져만 갔다. 열심히 살았으니 잠시 쉬자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러다 영영 바깥세상으로 나가지 못할까 봐 안절부절못하기를 반복했다. 나조차 어찌 할 수 없는 내 마음, 서로 다른 두 마음이 뒤엉켜 혼란스럽기만 했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주위에 도움을 청할 이도 없었다. 있다 해도 터놓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서글픈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간혹 동료를 만난 자리에서도 잘 지내는 척 연기를 했다. 직장을 떠나니 그동안 없었던 쓸데없는 자존심 하나가 더 생긴 것 같았다. 주변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데도 준비가 필요한 걸까. 들어야 한다면 감추고 싶은 나를 드러내도 괜찮을 사람이길 바랐다. 그렇다면 대상은 오직 하나였다.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떠나지 않을, 바로 나의 가족이었다. 가족들 역시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먼저 다가와 손 내밀어 주었다. 덕분에 나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혹시 지금, 가족 중 누군가가 퇴직을 했다면 이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첫째, “수고했다”는 위로의 말이다. 나는 퇴직 통보를 받는 순간 회사에서 내 쓰임새가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나를 버렸다는 생각에 그동안 바친 나의 땀방울이 모두 허망하게 느껴졌다. 회사에 대한 서운함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최선을 다했던 지난 삶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듯했다. 심하게 표현하면 내 존재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일하면서 온갖 풍파를 맞을 때도 회사 성장에 한몫했다는 자부심으로 이겨냈건만 덩그러니 남겨진 내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마치 단물 빠진 껍데기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제발 누구라도 나를 인정해 주기를 바랐다. 비록 회사가 아닐지라도 여전히 나는 가치 있고 변함없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길 기대했다. 몇십 년을 몸 바쳐 일한 회사를 나오니 도무지 쓸모없는 인간이 된 듯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회사를 떠난 뒤 새로운 자리를 찾기 위해 조바심을 냈던 것 같다. 내 인생 전체가 거부당한 느낌에 더더욱 증명해 보이려 했던 것 같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안간힘을 쓰는 나에게 수고했다는 남편의 위로마저 없었더라면 버티다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둘째, “괜찮다”는 격려의 말이다. 나는 퇴직 후 한동안 내가 회사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그저 모든 게 다 내 잘못 같았다. 한 해 전 실패했던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몇 달 전 작성한 기획안에 공을 더 들였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쓸데없는 가정을 해가며 자책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회사를 떠난 배경에는 나 하나만 있지 않았을 텐데 내 안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넘쳐나는 시간은 상황을 악화시켰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상상들이 끝도 없이 꼬리를 물었다. 대수롭지 않게 시작한 생각은 금세 거대하고 불길한 공상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나를 삼켜버릴 듯한 기세였다.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빠져나오려 애를 썼지만 결국 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에 걸리고 말았다. 화창한 햇볕을 쐬면서도 눈물을 쏟아냈고 밤이 늦었는데도 초롱초롱 두 눈을 감지 못했다. 벼랑 끝 심정으로 몇 주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회복하기까지의 고통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그 끝에 나를 살게 한 것은 약이 아니라 괜찮다는 친정엄마의 따스한 격려였다.

마지막으로, “함께하자”는 공감의 말이다. 나는 회사를 떠날 때 아이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아직 학생이라 당분간은 뒷바라지해야 하는데 부모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할까 봐 눈앞이 캄캄했다. 내 한 몸이야 어떻게든 살겠지만, 다른 가족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갑작스럽게 회사를 떠나게 되어 내겐 별다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늘 퇴직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도, 현재의 삶을 살아내느라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회사를 떠날 때 가졌던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런데 아이의 한마디가 수심 가득한 내 마음을 눈 녹듯 녹여 주었다. 아이에게는 차마 퇴직 사실을 알리지 못했는데 어찌 알았는지 넌지시 말을 걸어왔다. 그 한마디에 나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엄마, 용돈 깎아도 돼.” 대체 아이의 용돈을 깎으면 얼마나 깎을 수 있을까. 또, 깎는다고 해서 얼마나 살림에 도움이 될까. 아이도 모르지 않을 텐데 조금이나마 돕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평상시 말이 없는 성격이라 전해지는 감동은 한층 더 컸다. 순간 두 어깨를 짓누르던 부담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당장 달라지는 건 없더라도 내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걸어가 줄 진정한 내 편이 생긴 것 같아 든든했다. 가뿐해진 어깨만큼 내 두 발에 힘이 느껴졌다.

퇴직은 비단 회사와의 결별만은 아니다. 직장인으로 살았던 퇴직자 본인의 지난 삶과의 이별이기도 하다. 모든 헤어짐이 그렇듯 퇴직자에게도 회사를 떠나보낼 준비가 필요하다. 긴 세월이었던 만큼 더 오랜 시간을 쏟아야 할 수도 있다. 완전한 퇴직은 퇴직 통보를 받은 날이 아니라 그날부터 시작된 퇴직자의 가슴앓이가 끝나는 시점이 아닐까.

이제는 퇴직자 주변에 있는 가족들 차례이다. 가족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한 노고는 가족들이 아니면 누구도 풀어 줄 수 없다. 조금은 낯간지러울지 몰라도 진심을 모아 수고했다, 괜찮다, 함께하자는 말을 해보자. 퇴직자에게 그보다 더 큰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가족을 통해 퇴직자는 이별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출발을 꿈꿀 것이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퇴직자#가족#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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