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온 초전도체’가 뭐길래[횡설수설/김재영]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4일 00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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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2만 km의 자기부상열차, 전력 손실 없는 지구적 전력망, 스마트폰 크기의 슈퍼컴퓨터, 꺼지지 않는 인공태양…. 공상과학영화의 꿈이 현실이 되려면 모든 금속을 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연금술의 ‘현자의 돌’에 비견될 만한 꿈의 소재가 필요하다. 우리 주변 일상 온도와 기압 상태에서도 전기저항이 전혀 없는 ‘상온(常溫)·상압(常壓) 초전도체’가 그것이다. 100년 넘게 매달려 왔지만 풀지 못한 난제다. 이를 국내 연구진이 풀어냈다고 주장해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지난달 22일 국내 민간 연구진인 퀀텀에너지연구소가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에 공개한 22쪽짜리 논문이 시작이었다. 연구진은 납과 구리, 인회석을 이용해 ‘LK-99’라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었는데, 이 물질이 상온·상압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우연한 기회에 실마리를 얻었다”고 했다. ‘황산화납과 인화구리를 고진공 상태에서 925도로 굽는다’ 등 레시피도 특이하다. 흑연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뗐다 하다가 신소재 그래핀이 나왔듯, 위대한 발견도 처음엔 우연이나 장난처럼 보이기도 한다.

▷초전도체는 전기저항이 제로(0) 상태인 물질이다. 전기에너지를 손실 없이 전달할 수 있다. 자기장을 밀어내 물체가 자석 위에 둥둥 뜨는 ‘마이스너 효과’도 특징이다. 이 때문에 장거리 송전, 자기부상열차 등의 혁신이 가능해진다. 지금도 초전도체 자체는 활용하고 있지만 문제는 극저온과 초고압에서만 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11년 초전도 현상이 처음 발견된 이래 수많은 과학자가 상온·상압 초전도체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성공하기만 한다면 노벨상은 따 놓은 당상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논문이 발표되자 의심과 흥분이 교차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이 신소재 기술을 바탕으로 초강대국이 될 수도 있겠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기대도 퍼졌다. 영화 ‘아바타’ 속 바위산처럼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도시, 한국 대기업 총수들에게 초전도체 기술을 배우러 온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애국가 화면에 등장한 초전도체 등의 합성사진이 유행이다. 주식시장에선 이차전지에 이은 테마주로 부상하며 관련 기업 주가가 폭등하기도 했다.

▷국내외 과학계는 검증과 재현 작업에 나섰다. 미국과 중국에선 긍정적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논문과 동영상만 보면 초전도체로 보기 힘들다는 신중론이 아직은 우세하다. 연구소 측이 “공식적인 발표를 준비 중”이라는 말만 남기고 3일 연구소 홈페이지를 폐쇄한 것도 찜찜하다. 과학계의 변방인 한국이 모처럼 판을 뒤흔드는 상황인 만큼 사실이면 좋겠다. 하지만 21세기판 ‘현자의 돌’일지, 실수나 사기일지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지켜봐야 한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a.com



#상온 초전도체#공상과학영화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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