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규인]올림픽 2연패한 군의관… 한인 새미 리의 조국 사랑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3일 2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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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해외 인터넷 유머 사이트를 보다 보면 배우 전무송 씨(82) 얼굴이 눈에 자주 띈다. 그가 2007년 출연한 영화 ‘기담’의 한 장면이 ‘짤방’(간단한 사진이나 동영상) 시리즈 합성 요소로 쓰이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에는 ‘자식에게 기대치가 높은 아시아인 아버지’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 아버지의 최고 관심사는 단연 자식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다. ‘우리는 아시아인(A-Sians)이지 비시아인(B-Sians)이 아니기 때문에’ A학점을 받아야 한다는 식이다. 혈액형 검사에서 ‘B―’를 받아왔다고 자식을 꾸짖거나 ‘너는 제왕절개(C-Section)로 태어날 때부터 나를 실망시켰다’는 짤방도 있다. 아시아에서 남아 선호 사상이 심했던 건 딸은 성별 검사에서 ‘F’(Female)를 받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반대로 이 아버지가 가장 싫어하는 건 스포츠다. 미국 하버드대 졸업 후 미국프로농구(NBA) 선수가 된 대만계 미국인 제러미 린(35)이 등장한 짤방에는 “하버드대에 입학만 하면 아버지가 어떤 소원이든 다 들어준다고 했지?”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 아시아인 아버지가 자식에게 하버드대 입학만 강요하는 건 아니다. 자식이 좋아하는 대학이라면 어디든 가도 좋다. 전공이 ‘의학’이기만 하다면 말이다.

아시아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보여주는 이 시리즈를 보면서 새미 리(1920∼2016)가 떠올랐다. 한국인 이민자 2세로 로스앤젤레스(LA) 인근에서 태어난 리는 1948년 런던 올림픽 다이빙 남자 10m 플랫폼에서 금메달을 땄다. 아시아계 미국인 남자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한 건 처음이었다.

그렇다면 리의 직업은 무엇이었을까? 군의관, 그러니까 의사였다. 1947년 서던캘리포니아대를 졸업하며 의사 면허를 받은 리는 6·25전쟁이 한창일 때 조국을 돕고 싶어 군의관에 지원했다. 그러나 미군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부터 출전하고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리는 헬싱키에서도 같은 종목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 뒤에야 리는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고 1955년까지 주한미군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리는 런던 올림픽 준비 기간에는 매주 수요일 오후에만 수영장에 갈 수 있었다. 의학 공부로 바빴기 때문이 아니다. 아시아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은 수영장 물을 갈기 바로 직전, 그러니까 수영장 물이 가장 더러울 때만 물속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리는 나머지 6일 동안에는 집 뒷마당에 모래를 잔뜩 깔아 놓고 그 위로 점프하면서 다이빙 기술을 익혔다. 리가 런던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가져온 뒤에야 이 수영장은 인종 관련 규정을 손질했다.

리처럼 온몸으로 편견과 맞서 싸운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시기 어린 편견’으로 가득 찬 짤방에 코웃음 칠 힘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잊지 않고 계셨겠지만 내일은 리가 군의관이 되기로 결심한 계기였던 6·25전쟁이 발발한 지 73년 되는 날이다.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kini@donga.com
#아시아인#시기 어린 편견#새미 리#아시아계 미국인#올림픽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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