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동의의결, 피해자 눈물 닦아줘야[기고/이황]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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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필자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재직할 때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끼워팔기 사건을 담당 팀장으로 처리한 적이 있다. 당시 세계 최대 기업에 수백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최초 사건으로 이후 퀄컴,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의 위법행위를 제재하는 데 도화선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그 이면의 안타까운 사정은 알려지지 않았다.

공정위에 사건을 신고하고 조사에 협조한 미국 리얼네트웍스는 심의 막판에 7억6100만 달러를 받고 MS와 화해하며 신고를 취하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도 뒤이어 3000만 달러에 신고를 취하했다. 그러나 마찬가지 피해자였던 중소기업들은 아무 보상도 받지 못했다. 공정위 시정조치가 법원에서 확정된 후 중소기업 두 곳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끼워팔기와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전부 패소했다. 이 사건은 공정위가 법 집행을 성공적으로 해도 정작 피해구제는 요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의 당시인 2011년 동의의결 제도가 도입됐다.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받는 기업이 충분한 수준의 자진 시정방안을 제시해 승인받으면 제재 절차를 중단하는 제도다. 위법을 봐주는 것으로 비칠 수 있고 남용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공정거래 질서 개선과 피해구제라는 소명을 띠고 도입됐다. 어렵게 들여온 제도인 만큼, 문제를 최소화하면서 기여도를 높여 국민과 기업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맞다.

가장 절실한 과제는 소비자와 피해기업 보상이다. 현행법상 공정위가 위법행위를 제재하더라도 피해자는 별도의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배상받을 수 있다. 공정위의 시정조치 덕분에 위법사실 입증이 쉬워지더라도, 다른 법적 요건 및 손해액 증명 어려움과 높은 변호사 비용 등이 남아 있어 성공 가능성은 크지 않다.

불공정거래 행위는 기업 존폐를 좌우할 수 있다. 2019년 모 대형마트가 돼지고기 공급업체에 판촉비를 전가하는 등 갑질을 했다가 공정위로부터 시정조치를 받았다. 이는 2021년 말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그런데 피해 중소기업은 최근까지도 보상을 받지 못했다. 필자는 10여 년 전부터 공정위가 매년 거둬들이는 수천억 원의 과징금으로 기금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나눠 주자는 주장을 해왔다. 여러 의원입법안도 제출됐으나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동의의결은 피해구제라는 공정거래 제도의 구멍을 메워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데 기여하도록 설계됐다. 공정위가 동의의결 신청기업과 협의해 구체적 시정방안을 만들면서 합리적 재량을 발휘하면 법 집행으로 어려운 수준의 피해구제도 가능하다. 반면 섣부른 동의의결은 선한 의도와 달리 피해구제를 방해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공정위가 정상적으로 제재한다면 피해자는 그 기록을 바탕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비교적 쉽게 이끌 텐데, 동의의결로 종결되면 그나마 비빌 언덕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공정거래 제도가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국민과 기업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도둑맞은 재산을 되찾아주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동의의결 제도가 도입된 지 10여 년이 된 지금, 피해자의 아픔을 보듬고 납득시키는 제도 운용을 기대한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공정거래위원회#마이크로소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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