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조 저널리즘’의 파산 [횡설수설/이진영]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7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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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세대는 그 세대만의 저널리즘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소셜미디어 시대는 바이럴(viral)과 곤조(gonzo) 저널리즘의 시대다. 그런데 가볍고 말랑한 기사로 입소문을 유도하는 바이럴의 대명사 ‘버즈피드’가 뉴스 부문을 폐업한 데 이어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의견을 앞세우는 곤조의 ‘바이스 미디어’마저 파산 신청을 했다.

▷전 세계 온라인 방문자 1위였던 버즈피드가 뉴스 사업을 접은 게 지난달 20일. 그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몰락한 바이스는 버즈피드보다 서너 배 큰 온라인 미디어 그룹이다. 한때 기업 가치가 57억 달러(약 7조6000억 원)였으나 고작 2억2500만 달러에 팔릴 전망이다. 두 회사 모두 소셜미디어 광고에만 매달리다 재정난에 빠졌다. “전통 언론을 읽지 않는 밀레니얼 세대를 사로잡은 대성공 사례”라더니 충성도 낮은 뜨내기 독자들만 붙들고 있었던 셈이다.

▷바이스 성공 비결의 핵심이 곤조 저널리즘이었다. 곤조의 어원에 대해선 ‘바보’를 뜻하는 이탈리아어(gónzo)나 ‘미련하다’는 의미의 스페인어(ganso)에서 유래했다는 설까지 분분한데 놀라울 만큼 주관적이고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2013년 북한에 거액을 주고 성사시킨 데니스 로드먼의 방북 보도와 2014년 테러단체 IS 동행 취재기가 대표적이다. 바이스는 “우리의 에토스인 주관성이 북한과 IS의 실체를 드러냈다”고 했지만 위험한 ‘스턴트 저널리즘’으로 극단 세력에 이용만 당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통 언론의 객관적 보도에 도전장을 내미는 시도는 끊이지 않았다. 주관을 배제한 보도는 불가능할뿐더러 문제 해결도 못 한다는 생각에서다. 주의 주장을 앞세우는 ‘주창주의(advocacy)’나 ‘단언적(assertive)’ 저널리즘, 방관자가 아닌 실천자가 되자는 ‘시민(civic)’ 저널리즘이 그런 시도인데 곤조 저널리즘처럼 오래가지는 못했다. 객관주의에 대한 건전한 반성에서 벗어나 사실을 무시하고 정파성을 드러내는 바람에 줄줄이 외면받았다. 보수와 진보의 양극단에서 큰 목소리를 내던 폭스뉴스와 CNN 간판 앵커가 얼마 전 나란히 퇴출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00년간의 미디어 연구를 통해 검증된 사실이 있다. 언론은 사람들에게 생각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생각거리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미국 언론학자 톰 로젠스틸이 객관주의 보도원칙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객관적 보도는 ‘입장이 없는 관점(view from nowhere)’을 지향한다. 기자 개인의 주관에서 출발하더라도 이를 배제하고 다양한 시각을 담아내며 종착점에 이르자는 것이다. 모든 세대가 새로운 저널리즘 실험으로 반짝 주의를 끌다 사라지는 동안 지금껏 살아남은 건 객관주의 저널리즘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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