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피로 저장하는 ‘제철의 맛’[푸드 트렌드/김하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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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제철’을 붙잡아 둘 ‘가성비’ 저장식으로 제격인 굴 콩피. 필자 제공
겨울 ‘제철’을 붙잡아 둘 ‘가성비’ 저장식으로 제격인 굴 콩피. 필자 제공
김하늘 푸드컨설턴트·베리라이스 대표
김하늘 푸드컨설턴트·베리라이스 대표
입춘이 지났다. 하얀 입김과 노란 볕이 교차되는 이 순간, 아쉬운 마음으로 겨울의 끝을 잡아 본다. 얼마 전,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이탈리안 식당을 예약했다.

스테이크보다 삼겹살을, 와인보다 소주를 압도적으로 많이 먹고 마시는 남편은 오랜만에 양식당 데이트에 들떠 있었다. 포크와 나이프를 들썩이며 ‘굴 콩피(confit)’ 한 접시와 파스타 두 접시를 주문했다.

굴은 알겠는데 콩피란 무엇인가. 콩피는 ‘보존하다’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콩피르(confire)’에서 비롯됐다. 재료를 기름 혹은 설탕에 절이는 조리법, 혹은 그렇게 만든 음식을 말한다. ‘있을 재’의 이재훈 셰프가 ‘뚜또베네’를 운영하던 당시, 생굴 메뉴를 먹은 고객이 노로바이러스에 걸렸다. 이 셰프는 맛도 맛이지만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교훈을 안고, 생굴 메뉴를 버리고 굴 콩피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겨울이 끝나가며 일교차가 심해지는 이즈음에 딱 그 이야기가 생각난다. 굴은 11월부터 2월까지가 제철이므로 싸고 맛 좋은 이맘때 사두는 것이 좋다.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올리브 오일에 마늘 편을 넣고 중약불로 서서히 익힌다. 마늘이 노르스름하게 익으면 알이 작은 서해 강굴과 소금, 후추, 페페론치노를 넣고 익힌다. 5∼6분이면 충분하다. 마지막에 다진 이탈리아 파슬리와 달래를 넣어 향을 더해 마무리한다.

콩피는 그 맛도 맛이지만 집에서 굴을 장기 보관하기에 어리굴젓만큼이나 좋다. ‘겨울의 맛’을 오랫동안 붙잡아둘 수 있다. 냉장실에서 1개월, 냉동실에서 3개월까지 보관하며 제철 맛을 연장할 수 있다.

이뿐이랴. 여러모로 쓰임새가 좋다. 굴 콩피와 익힌 면 혹은 쌀이면, 라면보다 간단하지만 근사한 식사 메뉴가 탄생한다. 면과 함께 볶아 굴 파스타로도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육수에 볶은 쌀 위에 얹으면 굴 리소토도 뚝딱 완성이다. 배를 채울 필요가 없다면? 굳이 지지고 볶지 않아도 된다. 콩피 그 자체만으로도 와인이나 위스키에 어울리는 훌륭한 안주가 되니까. 고물가와 경제난으로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 ‘가성비’ 좋은 저장식이 돼준다. 저렴할 때 사뒀다 남은 과일을 졸여 잼으로 만드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 할까.

겨울이 끝나간다. 냉장고 속엔 굴 콩피가 그득 담긴 유리병이 쌓여 있다. 김장독에 김치를 가득 쟁여 둔 것처럼 뿌듯하고 든든하다. 이토록 훌륭한 음식을 창작한 이재훈 셰프에게 물었다. 굴의 철이 가면 무엇이 오냐고. 이 셰프의 제안은 생멸치다. 봄이 솔솔 오면 시장에 가서 생멸치를 사라. 소금물로 씻어 대가리, 내장, 등뼈를 제거하고 소금으로 절인 뒤 콩피를 하면 굴 콩피와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만든 멸치 콩피에 페타치즈와 올리브 다진 것을 더해 와인과 함께 곁들여 보라. 그렇게 계절을 붙잡아 보라.

김하늘 푸드컨설턴트·베리라이스 대표
#겨울#제철의 맛#굴#콩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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