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촌의 좁은 셋집에서 60대 어머니와 30대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현관문엔 전기료 독촉장이 붙어 있고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생활고에 몰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숨진 모녀는 올해 두 차례 위기가구로 확인되고도 사는 곳이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달라 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올 8월 “월세가 늦어져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수원 세 모녀’의 비극과 판박이다.
공교롭게도 신촌 모녀의 시신이 발견된 23일은 정부가 수원 세 모녀 사건과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며 그 대책을 내놓기 하루 전이었다. 정부는 24일 등록 주소지와 실거주지가 달라 소재 파악이 어려운 위기가구를 찾아내기 위한 보완책을 발표했다. 집이 비어 있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위기가구원 1만7429명에 대해 현장 조사 등을 통해 소재를 신속히 파악한다는 내용이다. 수원 세 모녀 비극이 발생한 지 3개월이나 지나 내놓은 늑장 대책이다. 좀 더 서둘렀더라면 신촌 모녀를 살릴 수 있었을까.
신촌 모녀가 갑자기 사라진 건 아니다. 3년간 집을 네 번 옮겨 다니며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동안 수개월 치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2년 치 건강보험료 미납 고지서로 꾸준히 구조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찾아가는 복지 행정’을 약속하고도 위기 징후를 감지하는 정부의 정보망은 좁고 성글어 구조 요청을 받아내지 못했다. 위기가구 발굴에 활용하는 정보를 34종에서 44종으로 늘리겠다는데 시행 시점은 내년 하반기다. 경기 침체로 한계 상황에 이른 가구가 급속히 늘고 있다. 굼뜬 행정으로 절박한 목소리들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을까.
수원 세 모녀도, 신촌 모녀도 동네 주민들은 “본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정부가 아무리 복지 행정망을 촘촘히 짜도 이웃의 무관심으로는 사각지대를 줄이기 어렵다. 동네 사정을 잘 아는 주민들이 인적 안전망이 된다면 숨어 있는 위기의 이웃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유례없는 경제 한파가 예고된 겨울이 오고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서울시청 앞 사랑의 온도탑 온도계는 뜨겁게 올라가곤 했다. 올 연말에도 간절한 마음들이 모여 꺼져가는 삶의 의지들을 따뜻하게 살려내길 기대한다. 한 해 사회복지 분야 예산만 200조 원을 쓰는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다. 빚 독촉장만 남기고 외로운 죽음을 선택하는 이웃이 더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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