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선희] 방어보단 집중과 공감, 신뢰 지키는 골든 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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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산업2부 차장
박선희 산업2부 차장
한때 편의점 오픈런을 불러일으켰던 포켓몬 빵이 남아돌기 시작했다. SPC 계열 제빵 공장의 20대 노동자 사망 사고 이후 불붙은 불매 운동의 여파다. 대형마트에선 포켓폰 빵 판매가 10% 줄었다. 파리바게뜨 가맹점들도 많게는 30%가량 판매가 줄며 타격을 받고 있다.

당장 줄어든 매출보다 우려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고조된 소비자들의 반기업 정서다. 사고에 충격을 받은 소비자들 앞에서 책임 소재를 피하기 위한 해명에만 치중했던 이 회사의 대응은 ‘불매운동’이라는 좀 더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역풍을 자초했다.

‘반감고객들’(삼성경제연구소)이란 책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 역량이 떨어지는 것보다 사회에 해를 끼치며 이기적으로 행동한다고 느낄 때 훨씬 강한 분노를 느낀다. 이 반감은 직장생활이나 개인적 인간관계에서 종종 느끼는 적대감보다 더 강렬한 감정이라고 한다.

반감고객의 대두는 기업으로선 큰 위기다. 특히 여러 종류의 반감 중에서도 불매운동처럼 집단적인 보복 행동을 보이는 건 응급상황에 가깝다. 소비자를 잃을 뿐 아니라 내부 타격도 심하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앨리 러셀 혹실드 교수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 반감은 내부 직원 만족도와 업무 효율, 기업 성과에 미치는 영향력도 매우 컸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비화되는 걸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 공감 능력이다. 이 책에 따르면, 불만을 제기하는 고객은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와 같다. 손실이 분명하다고 믿고 있으며 굳이 노력을 들여 문제를 제기하러 왔을 만큼 고통 역시 크다. 병원 사정 생각하기 전에 먼저 환자의 고통과 상처에 집중하고 공감해줘야 한다. 무반응이나 회피성 발언은 가장 나쁘다.

이러한 공감 노력은 부정적 평가가 확실시돼 강한 분노가 증폭되기 전, 과격한 공격과 집단항의로 이어지기 전에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많은 대기업이 느린 의사 결정 속도와 윗선 눈치 보기 문화 때문에 소비자들의 신뢰를 다시 얻을 골든타임을 놓치고 만다.

보신주의가 공고한 관료조직 역시 이런 상황에서의 악수를 조심해야 한다. 대통령은 SPC사태에 “인간적 최소한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공감력을 주문했던 바 있다. 하지만 정작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놓고는 중요 부처에서 “미리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가 아니다” 등의 회피성 발언이 성급하게 튀어나왔다. 슬픔을 공분으로 키운 SPC 사태의 패착을 보면서도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셈이다.

위기 상황일수록 든든한 울타리가 돼 줘야 할 정부가 불매 대상 기업이 받던 유의 비난에서 자유롭기 어려워진 건 모두에게 손실이다. 설령 책임 소재가 확실치 않은 상태라 하더라도, 충분한 공감이 먼저라는 골든 룰은 변하지 않는다. 그게 소비자를 진정한 동반자로 여기는 기업의 자세인 것처럼,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임을 기억해야 한다.

박선희 산업2부 차장 teller@donga.com
#반기업 정서#반감고객#불매운동#집중과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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