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어업 죽방렴의 가치[김창일의 갯마을 탐구]〈86〉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명절 전 배를 타고 목욕탕 가는 일은 연례행사였다. 섬 소년에게 도시를 구경할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도 했다. 삼천포항으로 향하는 여객선에서 본 죽방렴은 늘 궁금증을 자아냈다. 물고기가 왜 스스로 들어가서 갇히는지, 깊은 바다에 말뚝은 어떻게 박을 수 있었는지 등을 어른들에게 묻곤 했다. 경남 남해군의 부속 섬인 창선도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낼 때 죽방렴에 대한 기억이다.

언제부터 죽방렴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경상도 속찬지리지’(1469년) 남해현조에 죽방렴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는 것으로 봐서 최소 500년 이상 된 것은 확실하다. 죽방렴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은 경남 남해군의 삼동면과 창선면 사이 지족해협, 창선면과 사천시 삼천포 사이 바다다. 지족해협에 23통이, 삼천포해협에 21통이 있다. 두 지역은 죽방렴을 설치할 수 있는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췄다. 물살이 빠르고, 말목을 박을 수 있는 적당한 수심, 물고기가 많이 다니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과거 전남 여수, 완도 일원에도 죽방렴이 있었으나 지금은 철거돼 존재하지 않는다.

물살이 센 물목에 10m 내외의 참나무 말목 300여 개를 V자형으로 갯벌에 박고, 말목과 말목 사이를 대나무를 발처럼 엮어서 울타리를 만든다. 썰물에 밀려서 들어온 물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가두는 함정 어구다. 지역민은 죽방렴을 ‘대나무 어살’ 혹은 ‘발’이라고 한다. 주요 어획 어종은 멸치이지만 문절망둑, 볼락, 전어, 학꽁치, 붕장어, 전갱이, 돔 등 다양하게 잡힌다. 멸치가 어획량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수익성이 단연 으뜸이므로 여타 물고기는 잡어 취급을 한다. 잡힌 멸치는 정성스레 걷어 올려 어체 손상을 최소화한다. 삶는 과정도 신중하다. 발막(멸치를 삶아 말리는 곳)에서 미리 물을 끓이고 있다가 멸치가 도착하면 살아 있을 때 삶는다. 적당하게 익은 멸치는 채반에 담아 물기와 열기를 제거한 후 해풍으로 자연 건조하거나 냉풍 건조장에서 말린다. 어획량이 많지 않으므로 신선한 멸치를 신속하게 삶아서 크기별로 선별한다. 그물로 잡는 멸치와는 달리 비늘이 살아있는 깔끔한 빛깔을 유지한다. 죽방렴 멸치가 비싼 이유다.

4월에 조업을 시작하면 ‘지름치’라고 부르는 큰 멸치가 잡히는데 액젓용이다. 5월 초에는 시래기 혹은 시랭이라고 하는 세세멸이 많이 어획되는데 속이 투명하게 비치는 가장 작은 멸치다. 시래기가 좀 더 자라면 배쟁이라고 부르는 세멸이 되고, 소멸을 거쳐서 8, 9월경 중사리(중멸)가 된다. 윤택이 나고 맛도 좋아 죽방렴에서 잡는 멸치 중에서 가장 비싸게 판매된다. 안주용으로 인기가 높으므로 신경 써서 상자에 가지런히 담는다. 11월경에는 다 자란 대멸이 주가 된다.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은 수백 년 동안 한자리를 지킨 경관과 전통 어로 방식이라는 문화유산 가치를 인정받아서 2010년에 명승(제71호)으로 지정됐다. 인공의 어업시설이 명승으로 지정된 첫 사례다. 2015년에는 고유의 유·무형 어업자산 보전을 위해 해양수산부가 지정·관리하는 국가중요어업유산(제3호)으로 지정됐다. 죽방렴은 지족해협을 지족해협이게 하는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원시어업#죽방렴#전통 어로 방식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