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는 잘 키우려고 낳는 게 아니다, 사랑하기 위해 낳는 거다[지나영의 마음처방]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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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영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소아정신과 교수
지나영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소아정신과 교수
필자는 5년 동안 난임 치료를 받았지만 아이를 갖지 못했다. 어느 날 친정 엄마에게 “아이가 있었으면 진짜 잘 키웠을 것 같은데…”라고 아쉬움을 말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엄마가 “자식은 잘 키우려고 낳는 게 아니다. 자식은 사랑하려고 낳는 거다”라고 하셨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래, 그 말이 맞다. 아이도 낳기 전에 잘 키우려고 먼저 욕심을 내는 것보다, 어떤 아이든 있는 그대로 사랑을 먼저 줘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 사실 부모의 역할 가운데 사랑을 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은 현실과 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육아에 몰두한다. ‘이 시기엔 이것을 가르쳐야만 한다’는 식의 육아정보 속에 조바심도 느끼기 쉽다. 이른바 ‘밀착육아’가 보편화된 듯하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의 노후를 책임져 왔던 사회의 기본 구조가 깨지고 있다. 부모보다 경제력이 넉넉지 않은 자녀들이 늘고 있다. 고령화 추세는 갈수록 강화돼 100세 시대가 현실화되고 있다. 아이를 성인으로 키우는 것이 인생 과제의 끝이 아닌 부모 스스로도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한다. 부모도 노후를 고려하면서 육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기에 자녀에게 ‘다걸기’를 하는 육아 형태도 좀 변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지만 무엇보다 육아에서 중요한 것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은 아이는 단단한 자존감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 자존감을 바탕으로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다. 실패와 좌절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된다. 아이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는 것, 그 자체가 훌륭한 교육법이다.

20년 이상 미국에서 살다가 잠시 한국에 돌아와 아이들 사진과 시험 성적이 적힌 종이가 공개적인 장소에 게시된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학원에서 홍보용으로 배치한 것이겠지만, 이런 풍경에 익숙해진다면 부모도, 아이도 행복해지기 어렵다.

물론 한국의 입시제도와 취업 현실 등을 볼 때 경쟁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지금의 주요 과목 위주의 공부가 언제까지 아이에게 밝은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미래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을 지금의 현실에 가두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이렇기에 부모는 자신을 희생해 자녀 교육에 몰입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잘 살면서 아이에게 ‘이렇게 살면 되는 거야’라며 삶의 근본을 보여주면 된다. 그러면 아이는 자신의 잠재력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힘을 키울 것이다.

※ 지나영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2020년 10월 유튜브 채널 ‘닥터지하고’를 개설해 정신건강 정보와 명상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10월 기준 채널의 구독자 수는 약 15만7000명이다. 에세이 ‘마음이 흐르는 대로’와 육아서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육아’의 저자이기도 하다.

지나영 교수의 ‘자식은 잘 키우려고 낳는 게 아니에요’(https://youtu.be/KSDapibIssM)


지나영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소아정신과 교수


#사랑주기#교육법#입시제도#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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