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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포기는 나라가 하고, 애들 보고 ‘수포자’라니…[이진구 기자의 대화, 그 후- ‘못 다한 이야기’]

입력 2022-09-25 07:00업데이트 2022-09-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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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종해 국제수학연맹 집행위원 편 올해만큼 국내 수학계에 경사가 거듭된 해가 또 있을까요. 허준이 미 프린스턴대 교수의 필즈상 수상, 수학 국가 등급 최고 그룹 승격,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종합 2위 등 그야말로 뉴스가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입니다. 우리 수학 교육은 수포자(수학 포기자)란 말이 나올 정도로 붕괴했고, 대학에서 수업이 안 될 정도라는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걸까요. 하도 궁금해서 최근 금종해 국제수학연맹(IMU) 집행위원을 인터뷰했습니다. IMU는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여하는 곳이지요. 그는 고등과학원 교수이자 대한수학회장이기도 합니다.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배운다는 분수 문제를 소개합니다.

길이가 45cm인 색 테이프를 영훈이와 지연이가 나누어 가지려고 합니다. 지연이가 가져갈 수 있는 색 테이프는 몇 cm일까요?

영훈= 45cm의 5/9만큼 가져갈게.
지연=그러면 나는 나머지를 가져갈게.
여러분은 이 문제가 쉽게 이해가 되는지요. 어른도 잠시 생각을 해야 하는데 분수가 뭔지 모르고 처음 배우는 초등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2019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포자의 첫 갈림길이 초등학교 3학년 ‘분수’에서 시작된다고 발표했습니다.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왜 이렇게 어렵게 가르치는 걸까요. 그리고 학생들이 어렵게 느낀다면 나라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상식적인 답은 쉽게 가르칠 수 있다면 가능한 한 쉽게 가르쳐야 하고, 그 방법을 찾아서 제공하는 게 교육자와 국가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그 노력을 다한 뒤에도 남는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학생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어렵지만 꼭 필요한 것이니 배워야 한다고.

그런데 우리 현실은 쉬운 걸 쓸데없이 꼬아서 어렵게 가르치고, 어렵다고 하니 안 배워도 된다며 수능 출제범위에서 빼버린다고 합니다. 2009 개정 교육 과정에서는 행렬, 2015 개정 교육 과정에서는 공간벡터가 삭제된 게 그런 이유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돼 잘 몰랐습니다만 요즘 수능 수학은 고2, 고3 1학기 범위에서만 출제할 수 있다는군요. 금 교수는 “하도 어렵다고 아우성치니 학습 부담을 줄여준다는 취지인데 덕분에 대학에서 수업이 안 될 지경”이라고 했습니다. 당연한 결과겠지요. 입시에 안 들어가는 내용을 공부할 학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금 교수는 우리가 ‘수포자’라는 정체불명의 부정적인 용어를 써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수포자’라는 기준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기초학력이 미달하는 학생들은 있습니다. 그러면 ‘포기자’인가요? 이 학생들이 “더 이상 나는 공부고 뭐고 아무것도 안 하고 살겠다”라고 천명이라도 했습니까. 수학을 어렵게 느끼고 싫어하는 학생도 분명히 있습니다. 싫어한다고 다 포기자인가요? 공부가 좋아서 하는 학생은 또 몇이나 되겠습니까. ‘싫다’와 ‘포기한다’라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우리나라 문해력이 문제라더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금 교수는 “진짜 수학 포기자는 학생들이 아니라 제대로 가르치는 걸 포기한 나라”라고 했습니다. 수학이 어려워서 싫은 건 ‘포기’가 아니라 ‘포비아(공포)’일 뿐이고, 그러면 나라와 교육자들은 학생들이 겁먹지 않고 재미를 느끼며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안 한다는 것이죠. 앞서 말했지만 어려워도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꼭 배워야 한다고 설득도 하고요. 그런 노력은 1도 안 하고 어렵다고 이 내용, 저 내용 빼고, 그래도 어렵다고 하면 ‘수포자’라고 낙인을 찍고, 더 나아가 안 배워도 대학 갈 수 있다고 하는 나라야말로 진짜 ‘수포자’라는 겁니다.



이상한 교육 정책이 나올 때마다 근거로 드는 게 어려운 수학이 사교육을 부채질한다는 말입니다. 금 교수는 “수능을 구구단으로만 낸다고 사교육이 없어지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온갖 종류의 구구단 시험 문제가 만들어져서 학원에 다니게 할 거라는 것이죠. 사교육 증가의 본질은 경쟁인데 자꾸 어려운 교육 탓으로 돌리니 입시제도가 누더기가 되고, 결국 수백억 원씩 버는 소위 일타강사들만 양산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 사교육 기회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학생들을 위해 EBS 수능을 만들고 그 안에서 출제하도록 했지요.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나요. 아무리 출제범위를 줄이고, 문제를 쉽게 내도 사교육이 줄지 않는다는 게 그 반증 아니겠습니까.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왜 학생들이 쉬운 것만 배워야 합니까? 문제는 쉽게 낼 수 있지만 공부는 어려운 것도 배워야지요. 아니면 나라가 안 배워도 평생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던지요. 그러지도 못하면서…. 이건 나라 망하자는 이야기에요.”저는 우리 사회, 교육 당국이 금 교수의 이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뭐가 아쉬워서 이렇게 피를 토하며 걱정하겠습니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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