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금융위기의 덫’에 빠진 옐런 美재무[글로벌 이슈/하정민]

입력 2022-06-22 03:00업데이트 2022-06-22 10:22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7일(현지 시간) 워싱턴 의회에서 열린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난해 내내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일시적이라고 주장했던 그는 미 소비자물가가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 연속 8%대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1일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의 오판을 시인했다. 워싱턴=AP 뉴시스
하정민 국제부 차장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해 2월 일찌감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각종 부양책이 경험해보지 못한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욕조에 너무 많은 물을 부으면 넘칠 수밖에 없듯 넘쳐나는 유동성이 미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당시 미 소비자물가는 1.7%로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물가 관리 목표치 2.0%를 밑돌았다. 그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적었다. 특히 현 경제사령탑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물가 상승은 일시적이고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적극 반박했다.

이후 미 소비자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 5%대로 뛰더니 같은 해 12월 7%대로 올라섰다. 올해 3월부터 5월까지는 3개월 연속 41년 내 최고치인 8%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급기야 옐런 장관은 1일 CNN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 추이를 잘못 이해했다”며 사실상 공개 사과했다. 자신의 오판으로 정책 실기(失期)가 나타났음을 뒤늦게 시인한 셈이다.

물가를 잡지 못한 1차적 책임은 물론 중앙은행 수장인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게 있다. 그러나 1977년 연준에 처음 입사한 후 연준 이사, 샌프란시스코 연준 총재, 연준 부의장, 연준 의장 등을 지내며 통화정책에 잔뼈가 굵은 주무장관 옐런의 책임 또한 가볍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를 향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신뢰도 예전 같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20일 서머스 전 장관과 미 경제의 침체 가능성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침체 가능성이 낮다고 본 옐런 장관과 달리 서머스 전 장관은 내내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두 사람의 논쟁에서 사실상 서머스 전 장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최초의 미 여성 재무장관, 최초의 여성 연준 의장 등 각종 ‘여성 최초’ 기록을 쓰며 성공 가도만 달려온 엘리트 경제학자 출신의 옐런 장관이 인플레 대응과 관련해 체면을 구긴 이유가 뭘까.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물가 소방수’보다 ‘고용 투사’ 역할에 치중했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의 대처 방식을 고수하는 데 집착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당시 연준은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경기 부양에 나섰다. 특히 일자리 800만 개가 증발한 상황에서 실업률이 떨어지지 않자 물가 안정만을 통화정책 목표로 제시한 주요국 중앙은행과 달리 “완전 고용과 물가 안정이라는 ‘이중 책무(dual mandate)’하에서 통화정책을 운영하겠다”고도 밝혔다. 그런데도 2009년 한때 10%에 달했던 미 실업률은 2014년에야 5%대로 내려왔다.

반면 코로나19 초기였던 2020년 초 14%대에 달했던 미 실업률은 지난해 6%대로 떨어졌고 올해 5월에는 50년 내 최저 수준인 3.6%에 머물고 있다. 이렇듯 고용 상황이 안정적이고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 등이 정착됐는데도 이번 사태에서도 물가보다 고용을 중시하다 인플레 위험을 키웠다는 의미다.

서머스 전 장관과 옐런 장관의 뒤바뀐 처지 또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14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이 옐런을 최초의 여성 연준 의장으로 발탁했을 때 당시 오바마의 1순위는 서머스였다. 오바마는 자신의 경제 과외교사 격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지낸 서머스를 선호했지만 하버드대 총장 시절의 여성 비하 발언, 독선적 성격 등으로 서머스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옐런을 택했다. 이후 옐런은 재무장관까지 올랐고 서머스는 요직을 맡지 못했지만 인플레 대응에 관해서는 그의 판단이 옳았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개인이건 조직이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옐런 장관에게 금융위기 극복의 공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당시와 지금의 경제 여건이 상당히 달라졌다는 점을 조금만 빨리 인지했더라면 미국과 세계 경제 또한 지금 같은 수준의 인플레 공포에 휩싸이지는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그가 지금의 실패를 속히 만회하고 물가 소방수 역할까지 훌륭하게 수행한 장관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
베스트 추천